강명희 사모
강명희 사모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비스듬히/ 정현종

해마다 추수감사절에는 온갖 과일과 곡식 등의 열매로 강단 장식을 하였으나 올해는 다르게 꾸미기로 하였다. 2020년 나의 열매, 나의 감사,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한 것들, 나의 기쁨,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고 그 사진을 찍어 보내 주십사 하고 교우님들께 부탁을 드렸다.

되짚어보고 되새겨보며 그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일이길 바랬다. 다소 번거로운 일이 될 수도 있고 핸드폰으로 사진 찍는 게 쉽지 않은 노년층의 교우들에게 무례한 일이 될까 걱정하였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많은 분들께서 호응해 주셨다. 강단 장식을 하며 사진을 한 장 한 장 보고 있자니 그 가정에 있었던 일들과 그 분들이 이런 사진을 보내주신 사연들이 떠올라 마음이 흐뭇하기도 애틋하기도 하였다.

추수감사절 강단에 걸린 '사연 있는 사진들'
추수감사절 강단에 걸린 '사연 있는 사진들'

건강의 큰 어려움을 잘 견디고 그 시간을 온전히 함께 버텨준 가족들의 사진, 새 집을 장만하고 기쁨을 나누는 가족, 일찍 부모님 돌아가셔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공부하여 대기업 부사장이 된 막내 동생 사진을 비롯해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공장을 운영하시는 권사님, 그 아버님을 돕기 위해 대구에서 오신 사위 가족, 체코에서 급히 귀국해 자가격리 해야 하는 딸 옆에서 같이 격리하며 딸을 돌본 엄마.

엄마 아빠 모두 출근하고 세 아이들만 집에서 원격 수업해야 했던 가정. 손주들 사진, 새롭게 시작한 포도밭 사진, 귀여운 강아지, 멀리서 그리워하던 교회 사진, 식장에 49명만 들어갈 수 있는 결혼식을 해야 했던 집사님, 요양원에 오래 계시다가 천국 가신 어머니, 돌아가시면서 아들 손에 쥐어준 용돈은 꼭 임플란트 하라고 치매로 기억은 잃어가면서도 아들의 치아까지도 살피셨던 어머니 사진을 보내준 권사님.

그 틈새에서 나의 사진은 '녹보수'였다. 이 녀석은 두 번의 고비를 겪고 다시 살아나서 나의 애정을 듬뿍 받는 존재이다. 3년 전, 선물로 받은 것인데 예배당 안에서 겨울나기 하다가 얼어 죽을 뻔! 한 것을 거실로 들여서 살려냈고 그렇게 살아난 후 깍지벌레의 무자비한 습격으로 잎을 모조리 떨구어 내려서 강제 삭발을 당한 후에 다시 푸르고 젊은 잎을 피워낸 의지를 보여 주었다.

보도 듣도 못한 코로나19 시대를 살면서 나에게 힘을 주고 위안을 준 존재가 신앙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냐고 반문 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진심이다. 이 나무를 만지며 이가 힘을 내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지켜보며 생명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잎을 떨구어야 할 때는 미련을 두지 말고 다 털어 버려야 함도 배우고, 필요 충분의 욕구만 채워지면 보란 듯이 허리를 꼿꼿이 펴는 자세도 배웠다. 나는 이에게 기대어 살았고 이 식물은 나의 돌봄에 기대어 살았다.

가족의 지지와 사랑으로 살았고 그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많은 어려움, 시련을 껴안고 살기도 했다. 꽃을 가꾸며 반려견의 따스함에 기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 주기도 하고 그 어깨에 기대서 지친 머리를 쉬게 하기도 하였다.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그러하기에 나도 맑기도 흐리기도 하다니 한 치도 내 행복에 겨워 교만하지도 말고 내 불행에 침잠(沈潛)하지도 않으련다. 오늘의 내 숙제는 내 어깨에 기댄 그를 위해 좀 더 단단해 질 것, 또한 말랑해 질 것이다.

강명희 사모와 '기댐'의 교훈을 주고받은  '녹보수'
강명희 사모와 '기댐'의 교훈을 주고받은 '녹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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