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훈 목사
이공훈 목사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중고등부 여름수련회가 3박 4일 동안 열렸고, 강이라고 하기에는 좁고 개울이라고 하기에는 넓으며 얕은 곳은 발목까지 올라오지만 깊은 곳은 사람 키를 훌쩍 넘기는 깊이인, 물놀이 하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곳이 지척인 곳에서 우리는 신나게 여름수련회를 즐겼다.

여선교회 분들이 우리와 같이 머물면서 매끼 정성어린 밥으로 배를 채워주셨고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별빛으로 가득한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을 노래하기도 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형들과 누나들의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음을 다해 우리를 돌보고 사랑해 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셨고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에는 눈을 반짝이며 진지하고 흥미롭게 성경 이야기를 들었다. 성경공부가 끝나면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각종 프로그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중학생이었던 나와 친구들에게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은 물놀이 시간이었다.

교육전도사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헤아려서 원래 계획된 시간보다 더 오래 물에서 놀게 해주어 우리는 배가 고프도록 자맥질을 하며 인생의 소중한 한 조각을 수련회를 통해 만끽하였다. 물속에서 지치도록 놀다가 나와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너나 할 것 없이 강가에 지천으로 널린 자갈 중에 손에 쥐기 좋고 납작한 것을 골라 물 위로 던지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물제비를 뜨는 것이다.

솜씨 좋고 힘도 좋은 형들은 모두의 탄성을 자아낼 만큼 통통 물 위를 여러번 튀도록 돌을 던졌고 또 어떤 누구는 한 번도 돌을 튕기지 못하고 물속으로 빠져버리는 것을 보며 우리는 박수치며 좋아하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 재밌고 즐거운 놀이를 그해 수련회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갑작스런 사건이 일어났다.

힘센 형 하나가 집어 든 돌은 단단했을 것이고 흠집하나 없이 반짝였을 것이며 보기 좋게 납작했을 것이다. 누가봐도 물에 빠지지 않고 가장 멀리 날아갈 것처럼 생긴 돌을 집어 든 형은 몇 번의 준비운동을 하고서 하나, 둘, 셋 구호에 맞춰 힘을 다해 돌을 던졌다. 형이 던진 돌은 그 어떤 물수제비보다 경쾌하게 파바바박 소리를 내며 물 위를 매끄럽게 튕겨 나갔다. 바로 그때였다.

어떤 사람이 물속에서 머리를 쓱 내민 것은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해도 타이밍을 맞추지 못할, 마치 만화에나 나올법한 일이었다. 그 사람은 잠수를 하고 있어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형은 그쪽을 향해 물수제비를 뜬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절묘한 타이밍에 잠수를 하던 사람이 고개를 들었고 물위를 튕겨 나가던 돌은 정확하게 그 사람의 이마를 맞추었다.

그 장면은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아직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돌에 맞은 사람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이마를 부여 잡았고 우리는 마치 얼음 땡 놀이의 얼음의 시간처럼 누구는 입을 벌리고 누구는 머리를 부여 잡으며 누구는 눈을 가린채, 누구 하나가 땡을 해줄 때까지 그 자리에 꼼짝 못하고 서 있었다.

멈추었던 시간은 다시 흘렀다. 전도사님은 돌에 맞은 사람을 향해 뛰어갔으며 선생님들은 서둘러 우리를 데리고 수양관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여선교회의 한 명으로 수련회에 와 계셨던 어머니께 이 일이 어떻게 처리 되었는지 듣게 되었다.

수련회 예산으로 치료비를 주기에는 가지고 있던 돈이 부족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던 교육전도사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나이가 지긋한 심방전도사님이었다. 심방전도사님은 우리가 3박 4일 동안 먹을 쌀 중에서 일부를 가지고 나가 팔아서 부족한 돈을 마련하는 것으로 이 곤란한 상황을 돌파해냈다.

결국 이마를 다친 사람에게 그렇게 마련한 치료비를 주는 것으로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마무리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수련회 남은 기간 동안 쌀이 모자라서 배를 곯지는 않았으니 이 또한 수련회에서 경험한 은혜라면 은혜였다.

2021년 1월, 하늘에서 떨어진 눈송이 하나가 이마에 떨어졌을 때 왜 40여 년 전 물수제비가 떠올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치 내가 그때 강에서 돌을 맞은 사람인 것처럼 눈송이에 맞은 이마를 아프게 문지르며 하늘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수련회의 그 밤에 보았던 하늘의 별들 같았다. 그 셀 수 없이 많은 반짝이는 노란 불꽃들이 나를 향해 쏟아지고 부딪히며 은총의 빛으로 반짝였다.

눈송이 하나가 이마에 떨어지는 순간의 나는, 돌을 집어 들어 던져 물 수제비를 뜨는 사람이며, 물속을 헤엄치는 사람이고,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채 내가 던진 돌에 내 이마를 맞는 사람이다.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나누는 경계가 없어지고 나와 너의 벽이 무너지는 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지 싶다.

그래서 성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있고 그것을 알아챈 사람은 누가 뭐래도 항상 기뻐할 수 있고 그 기쁨을 노래(기도)할 수 있으며 오늘 나에게 이루어지는 일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며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하늘이 내리시는 눈송이 하나에서도 은혜를 보고 싶은 것이다. 내 이마에 떨어져 금방 녹아 없어지는 눈송이에서 온 우주에 가득 찬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싶은 것이고 눈송이로 나에게 떨어져 내 안으로 녹아 들어가는 하나님을 맞이하고 싶은 것이다. 아아, 나는 결국 저 별빛 같은 눈송이로 너에게 부딪히는 하나의 신비가 되고 싶은 것이다.

저작권자 © 웨슬리안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