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훈 목사
이공훈 목사

TV를 켰다가 우연히 EBS방송국에서 하는 ‘길 위의 인생’이라는 다큐를 보게 되었다. 그날은 ‘히말라야 소년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평생을 짐꾼으로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와 이제 막 짐꾼의 길에 들어선 아들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산에 오르고 길을 걷는 것을 즐기고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꿈의 코스인 에베레스트 가는 길에는 커다란 바구니에 끈을 달아 머리에 걸고 굽이진 고갯길을 오르는 짐꾼들이 있다. 그들은 꼬박 3일 동안 위태위태한 경사길을 올라야 우리 돈 3만 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소남이는 에베레스트의 관문인 루크라에 사는데 평생을 짐꾼으로 에베레스트를 오르내린 어머니를 따라 짐꾼의 길에 들어섰다. 소남이의 꿈은 사업가가 되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학교에 가고 싶지만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남이는 자신의 몸만큼 큰 바구니를 짊어지고 어머니와 함께 산을 오른다. 그 어머니는 바람난 첫 남편에게 버림받고 지금의 남편과 재혼했지만 고단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소남이를 낳고 한 달 만에 짐을 지고 산을 올라야 했던 그녀는 관절염으로 다리가 아파서 빨리 걸을 수 없지만 아들과 함께 산길을 오른다.

일행에 뒤처져 늦어지는 어머니의 아픈 다리가 마음에 걸리는 소남이는 어머니보다 앞서 걸어 나가다가도 길가에 서서 어머니가 오는지를 확인하고 다시 걷기를 반복하였다. 그렇게 길을 걷던 어머니는 어느 순간 울기 시작하였다.

“아이고, 고단하고 힘든 내 인생...”

나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소남 어머니의 그 말에 내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다. 나도 괜히 서럽고 억울하고 힘들어서 소리 내어 함께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자기의 힘들고 고단한 인생을 원망해도 그 무거운 바구니를 내려놓을 수 없는 히말라야 여인의 현실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말씀이 저 히말라야의 산을 오르며 아픈 다리를 붙들고 아이고, 고단하고 힘든 내 인생아 한탄하며 울고 있는 저 여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너무 쉽게 말했구나, 나는 지금까지, 힘들고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 짐을 예수 앞에 내려 놓으라고, 왜 그 짐을 지고서 힘들어 하냐고, 당신의 어깨를 누르는 그 인생의 걱정과 염려를 차곡차곡 쌓아서 예수 앞에 가져다 놓으면 된다고 너무 쉽게 말했구나.

지금까지 꾹꾹 참고 또 참아서 몸 안을 가득 채운 눈물이, 고달프고 힘든 인생의 짐에 짓눌려 마치 땀처럼 온몸 구석구석으로 새어 나오는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나는 지금껏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인가, 아무리 울어도 어깨를 짓누르는 그 짐 내려놓을 수 없어서 하루의 피곤함에 감기는 눈을 애써 부릅뜨고 교회에 나와 주여, 주여를 부르며 가슴을 치고 애끓는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했던 것인가, 부끄럽고 창피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이 한 말씀 하시기 위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달라’는 그 언덕에서의 피맺힌 기도 후, 그러나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걸으신 분이 예수이시다. 그렇게 속이 타들어가 시뻘건 숯만 남아 그 붉은 빛을 움실움실 뿜어내는 가슴 갖지 못해 본 사람은, 무거운 짐을 가지고 오라고, 함께 짊어지고 저 산을 오르고, 그 언덕 넘어서자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목회하는 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 공동체다. 어떤 목사님이 쓴 글에서 자기 교회는 100여 명 밖에 모이지 않는 작은 교회라고 하는 것을 보았는데 100여 명이나 모이는 ‘대형’교회 목사님이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할 수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만큼 작은 교회이다.

그래서 교우들과 그 자녀들 심지어 교우들의 형제, 자매들과 부모님의 사정까지 낱낱이 알고 있고 그것을 두고 함께 기도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그렇게 모두를 기억하며 기도하고 난 날, 나는 아내에게 푸념처럼 말했다. 어쩌면 우리 교우들은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이렇게 고단한 삶을 사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아내는 이 세상 모든 인생이 그렇게 고단하지 않겠냐고, 고단하고 힘들지 않은 인생이 어디 하나 있겠냐고 하며 교우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안타까움을 짙게 내뱉었다.

나는 이제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짐을 지고 걱정과 염려로 짓눌리지 말고 예수에게 와서 그 짐을 내려놓으라는 말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지금도 온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을 지고서 힘든 한발을 딛고 아침을 나서는 히말라야의 수많은 소남이 엄마들을 생각할 것이다.

또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서,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 예수의 이름 부르며 하늘나라를 살아가려 애쓰는 교우들의 삶을 사랑하며 껴안을 것이다. 이것이 2021년 사순절을 살아가는 나의 기도이고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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