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진 목사
황창진 목사

L권사님은 거의 날마다 예배당에 나와서 마당을 쓸거나 삐져나온 나뭇가지를 다듬거나 하셨습니다. L권사님 덕분에 교회의 주변은 항상 깨끗하고 말끔했구요,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그렇게 봉사하시는 L권사님이 고맙고 감사하니 항상 따듯한 인사를 건내셨습니다.

“권사님, 천천히 하세요, 쉬엄쉬엄하세요~”

어느날, 그 교회의 교인 한 사람이 물어봤습니다.

“권사님은 왜 이리도 열심히 교회를 돌보시는데요?”

“그냥요, 뭐 몸에 배어 있으니까요, 젊은 시절부터 해 오던 일이니 안하면 몸이 근질거려요. 나 좋자고 하는 일인걸요 뭐 . . .”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던 교인은 멋적은 듯 뒷머리를 긁으며 돌아섰습니다.

아브람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자꾸만 조카 롯의 식구들과 자신의 식솔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네겝 땅에서 아브람의 삶은 정말 괜찮았습니다. 짐승들도 꾸준히 불어났고 재물도 꽤나 모을 수 있었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조카인 롯도 만만하지 않은 가세를 자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애시당초 그 땅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부족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좁디 좁은 네겝땅에서 ‘복작복작’ 살아가는 일이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쩌겠냐? 우리가 함께 한 울타리에서 살아가는 일이 힘들어졌으니 조금 떨어져서 살자꾸나”

삼촌의 제안에 롯은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한 쪽은 거칠고 먼지가 풀썩거리는 광야 땅이고, 눈을 돌려 바라본 또 다른 한 쪽은 휘황찬란하고 삶의 여건이 잘 갖추어져 있는 소돔이 보이니 롯은 주저하지 않고 소돔 쪽으로 옮겨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런 조카의 선택에 대하여 아브람은 걱정입니다.

“소돔은 너무 험하지 않겠니?”

“생활하기는 좋을 거예요. 눈을 돌리면 필요한 모든 것이 바로바로 보이는 정말 편리하고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이 보장되는 동네거든요.”

아브람의 염려에 자신 있게 대답하는 롯은 정말로 자신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 척박한 광야에서도 믿음을 지켰고 더불어 생활에 필요한 재물도 넉넉하게 불려 냈는데 어디가면 이보다 못할까? 도시에서 헤매며 자리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은 능력이 없는거지, 게으르고 자기관리 못하고 그러니 엉뚱한데 힘을 쓰며 싸움질이나 하는거지’ 롯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짐을 싸고 가족들과 소돔으로 옮겨가고 말았습니다.

아브람은 불안합니다. 저 젊은 조카인 롯이 소돔에서 살아가는 일이 안전할까? 그 휘황찬란한 불빛과 좋아 보이기만 하는 문명의 화려함에 하나님을 묻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노심초사입니다.

롯이 선택한 방향과는 반대쪽에 자신의 삶의 자리를 정하고서는 그 광야의 거칠어서 푸석거리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그러지 마십시오. 소돔을 무너뜨리시면 거기에 살아가는 의인들은 어떻게 하시려구요?”

“. . . .”

“만일 소돔에 의인이 10명이라도 있으면 그 의인들은 어쩌시려구요? 그 의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간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거기에 저의 조카 롯이 있습니다. 롯은 삶의 열정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좋은 친구이지 않습니까?”

“지식 없는 열정과 지식 있는 열정은 조금 다르지 않겠니? 삶의 자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열정이 자기를 엉뚱한 곳으로 몰고 갔는데 . . . 그러니까 지식이 없는 열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리 말을 해줘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야 마는 것을. . .”

롯은 어느날 손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게 손님을 맞이하는 시간은 환대를 위한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야 할 시간에 소돔의 사람들이 보인 태도는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들은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애써 외면하면서 자기들의 망가진 삶의 양식을 끝까지 고집하고 있습니다. 자기들과 함께 한동네에서 살아온 롯도 외국인(alien 창 19:9, NIV)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그들은 자기들이 살아가는 법과 다른 생각이나 보다 나은 규칙이 끼어들 여지를 내어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배타적이고 획일적인 일관성은 무너짐의 원인이 될 수 있나 봅니다. 결국 소돔이 무너지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어느날, 우리 교회 식구들과 함께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면서 그랬습니다.

"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요?"

"왜 그렇게도 성서를 열심히 읽으라고 하시는데요?"

무엇 때문에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지는 어지간히 알아야 하잖아요? 성서에 나오는 누구들처럼 알지도 못하면서, 또는 알지도 못하는 신을 향하여, 자기도 알지 못하는 소리를 마냥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저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꾸준히 독서하고 공부하면서 품격있는 믿음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해요~”

“목사님, 그게 무슨 뜻인데요?”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 지시적이고 확증적으로 대화를 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기 생각을 상대방에게서 동의받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않으면서 논리의 우위를 점하려는 대화를 하곤 하죠. 그렇게 대화를 하니 대화가 공감의 자리로 가기보다는 갈등과 대결국면을 만들거든요. 대화는 탐색적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는 무슨 생각과 경험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살피고 좀 더 포괄적으로 대화의 파트너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어울림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로 나아가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 교회 식구들과 꾸준히 나누는 대화의 내용들입니다. 감사한 것은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나면 어느 순간에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문득 느끼게 되고, 그것이 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는, 공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없는 열정은 아무 생각없이 교회 마당을 열심히 쓸어내게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마당은 깨끗함을 유지하겠지만 아무 생각이 없이 마당을 쓸고 있는 사람은 마당을 쓸어내야 하는 습관적 당위(當爲)의 조종을 받아 자발성을 상실한 줄인형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문득 윤경 집사님의 페이스 북이 저의 페이스북의 첫 번째 화면으로 떠올랐습니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사람’

▲ 롯의 아내가 소돔성을 탈출하다가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변했다는 소돔산 '소금기둥'
▲ 롯의 아내가 소돔성을 탈출하다가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변했다는 소돔산 '소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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