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락 교수, ‘웨슬리의 소그룹과 공동체의 회복’이 코로나 시대의 극복 요소

대응 방식 
1. 포스트 코로나시대 ‘선교적 상상력’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라
2. 구심적 교회에서 구심적+원심적 선교적 교회로 바뀌어야
3. 도시예배와 영성 커뮤니타스(공동체)로
4. 감동의 스토리 쓰며 전도하라

본지에서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주상락 교수(명지대)가 최근 빛가온교회(서길원 목사)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선교적 상상력’이라는 제목의 강의 내용을 입수해 전문을 게재합니다. 주 교수는 이 강의를 통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 교회의 환경은 어떻게 변할지를 모색하고, 복음 전도는 어떤 방식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를 통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목회와 선교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교회에 도움이 되길 소망합니다. <편집자 주>

● 주상락 교수의 프로필

주상락 교수
주상락 교수

명지대 객원교수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신대 강사(선교학, 전도학)
아현성결교회 전도목사
이롬 사목
전 미연합감리교회 북알라바마연회 교회개척부 연구위원
joy 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1.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세계 질서

코로나 이후 세계는 어떻게 변해갈까요? 유명 학자들이 전망한 것들을 보겠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이 주장한 내용인데요, 그가 주장한 위험사회론이 도래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위험사회론은 세계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발전하면 위험이 더 커지고 공간과 나라를 뛰어넘어 위험이 글로벌화되며 유비쿼터스화된다는 것입니다. 즉 위험 요소가 광범위하게 어디에든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 울리히 벡의 주장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입니다. 코로나는 부자 나라나 가난한 나라 상관없이 전 세계적으로 번져가고 있지요.

두 번째가 자국민 중심주의가 발흥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동안 세계화로 인해 마음껏 다른 나라로 갔습니다. 여행도 그렇고 무역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런 무조건적인 세계화에 대해 강한 저항감이 일어날 것이고, 이것은 앞으로의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경계심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학자들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가 판옵티콘(통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빌게이츠는 2015년 3월 TED 연설을 통해서 이미 앞으로 핵폭탄보다 바이러스가 세계에 가장 위협적인 것이 될 것이라 예견했습니다. 그러면서 빌 게이츠는 백신 접종과 함께 추적이 가능한 전자칩 ID를 몸에 삽입하는 내용을 담은 UN ID 2020 사업의 공식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판옵티콘은 누구나 통제가 가능한 감옥과 같은 사회를 말하는데, 미셀 푸코가 주장한 내용입니다. 코로나 이후 앞으로의 사회는 통제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칩을 몸에 넣으면 자동으로 체온을 알 수 있습니다. 칩이 몸에 들어가면 온도를 잴 필요가 없지요. 

네 번째로 유발 하라리는 시민역량사회 대 전체주의적 감시 정치 또는 국수주의적으로 고립하는 국가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피엔스, 호모데우스라는 책을 쓴 유발 하라리는 극렬한 무신론자로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는 사람인데, 그는 앞으로는 하나님이 없고 인간을 뛰어넘는 AI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코로나와 관련해서 두 가지 나라가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시민역량을 통해서 극복한 나라와 전체주의 감시를 통해서 극복한 나라인데 앞이 우리 나라이고, 뒤가 중국과 이스라엘이 사례가 됩니다. 유발 하라리는 후자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감시체제로 국가가 통제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국수주의적 고립, 전체주의의 발현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코로나 시대의 질서를 예측하는 견해입니다.
 

2. 문명사적 변혁

그러면 문명사적으로 어떻게 변혁이 일어날까요? 정리해 보면 다음 8가지 정도가 됩니다.

1) 질병감시체제 
2) 미국 유럽의 주도권 변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재해석 
3) 기업 중심에서 가정중심 (재택근무, 대량해고, 자급자족) 
4) 비즈니스 유통업의 혁명적 변화- 비대면 주문, e 커머스 시장 
5) 온라인 교육,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의 확대, 대안교육과 홈스쿨링 부상 
6) 의료 전달체계의 변화-원격의료 서비스의 보편화, 예방& 면역 
7) 대형화, 물질화, 상업화에서 소그룹 공동체 중심으로 본질회복
8) 국제 이주와 여행의 시스템변화- 의료시스템이 잘되어 있고 안전하고 깨끗한 지역, 여행 조건이 복잡해지고 까다로워짐

두 번째 경우를 보면, 최근까지도 미국이나 유럽사람들은 아시아 사람들이 열등하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에 대해 재해석이 일어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기업 중심에서 가정 중심으로 바뀌는데, 이는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도 가정 중심적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재택 근무가 늘어나고, 비대면 수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가정 중심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가정이 변해야 합니다. 가정이 바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런 역할을 기독교인들이 해야 합니다. 가정 사역이 중심이 되고, 끈끈함과 사랑으로 소그룹(목장, 속회)을 해야 합니다. 

온라인 교육이 활성화되고 소그룹 중심의 대안 교육이 발전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대형화, 물질화에서 소그룹 중심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작고 의미 있는 것들 사랑 공동체가 중요해집니다. 

3. 포스트 코로나시대 한국교회 도전과 대응 

WHO 로고
WHO 로고

1) 종말론적 도전과 종말론적 신앙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인류 전체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으며 앞으로도 국제관계와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서 근본적이고 심각한 도전이 될 것입니다. 교회가 최근에 와서는 언론과 심지어 정부로부터도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종말론적인 차원의 도전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도전 앞에서 교회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르치고 회복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네번째 인을 뜯는 장면이 나오는데, 푸르스름한 말이 나오고, 전쟁 기근 질병으로 1/4이 죽는다고 표현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에 의해서만 아니라 예수님이 오신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종말론적 신앙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명령대로 최선을 다해서 섬기고, 전도하고 청소년 사역을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민 21:9) 

‘WHO’의 상징을 보면 놋뱀 형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결국 답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뱀은 바이러스입니다. 이 뱀에 물렸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상징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2) 미래의 교회는 이렇게 바뀔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에는 일상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주일에만 거룩하고 평일에는 일반인과 다름이 없는 사람들을 선데이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미래의 예배는 주일날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일상의 예배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됩니다. 

그리고 삶 속에서 각자 예배의 결과를 나누는 코이노니아 공동체가 발전할 것입니다. 나누는 코이노니아 공동체는 웨슬리 목사가 내세웠던 소그룹의 공동체와 다름이 없습니다. 따뜻한 섬김이 있는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소그룹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교회는 이제 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감리교회는 원래 가지고 있던 속회를 중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물론 그 안에서 코이노니아가 있어야 합니다. 교제하고 사랑하며 떡을 떼고 함께 선교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 의식도 중요하지만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저는 전도학자로서 13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까 입으로 전하는 복음의 능력이 파워가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삶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파워가 없는 것입니다. 미래의 예배는 의식만이 아니라 삶이 변화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3) 시대별로 본 교회의 패러다임

초대교회는 성도의 삶이 중요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이하의 말씀을 보면 초대교회는 오순절에 성령 충만해져서 함께 떡을 떼며, 사랑하며 삶을 나눴습니다. 그러던 것이 중세교회에서는 제도화되었습니다. 제도화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만, 제도화만 있으면 문제가 됩니다. 웨슬리 목사는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열정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유럽의 교회는 문화가 되었고, 미국은 대형화, 기업화되었습니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이후 교회는 소그룹과 함께 일상의 영성을 강조하는 교회로 성장해야 합니다. 이는 ‘백투터 베이직’입니다. 바로 초대교회의 영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존 웨슬리 목회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4.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성공하려면

에즈베리교회의 전통예배 모습
에즈베리교회의 전통예배 모습

 

1) 선교적 상상력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라
지금은 두려움의 시기입니다. 두려움을 게파르(gefahr, 영어 danger) 또는 리지코(risiko, 영어 risk)라고 하는데요. 게파르는 일반적인 두려움을 말하고, 리지코는 항해사들에게서 나온 말인데, 위험을 넘어서는 것을 말합니다. 뱃사람들은 바람이 없을 때가 아니라 바람이 불 때 항해합니다. 그리고 비바람이 치더라도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리지코’라는 말처럼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두려움을 헤치고 나가야 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선교적 섬김의 삶을 위해서는 우리는 상상력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조지 헌스버거 (George R. Hunsberger)는 미국에서 선교적 교회 운동을 창시하신 분입니다. 그는 “'위기(危機)'는 위험(危險 danger)과 기회 (機會 opportunity) 두 단어의 앞글자를 합성한 말로, 위기에는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여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선교적 교회는 위기의 시기에 선교적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Missional Church: Vision for the Sending of the Church in North America 78)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이 바로 위기의 시대입니다. 따라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스페인 항해사가 바다를 항해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상상력에는 ‘예언자적 상상력’, ‘도덕적 상상력’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각각 월트 부루그만, 존 폴레더락이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월터 브루그만은 예언자적 상상력에서 “예언자적 목회의 과제는 우리를 둘러싼 지배 문화의 의식과 인식에 맞설 수 있는 대안적 의식과 인식을 끌어내고 키우고 발전시키는 것이다”라고 했고, 존 폴레더락은 도덕적 상상력에서 “도덕적 상상력은 현실 세계에서 도전을 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직 존재하지 않는 해답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대안이 없을 때, 두 그룹이 갈등을 경험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A와 B가 대치할 때 평화를 위해서는 도덕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또 두려워할 때 대안 의식을 갖는 것을 예언자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두려워할 때 의식을 뛰어넘은 대안의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를 힘들게 하는 의식은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이 두려움을 뛰어넘은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대안의식입니다. 도덕적 상상력에서 말하는 ‘존재하지 않는 해답’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해답이고 우리는 이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특히 이런 위기의 시대에는. 

<Restart의 원리로 미래를 여는 교회>라는 책을 보면,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한 요건을 ‘예배를 살려야 한다’, ‘설교가 변해야 한다’, ‘기도가 살아나야 한다’, ‘비전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학자로서 저는 부흥하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라고 믿습니다. 다른 분들은 부흥하는 교회와 건강한 교회를 따로 떼어놓는데, 저는 같이 가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다섯번째로 요건으로 ‘선교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선교적 상상력은 특히 코로나와 같은 위기 시기에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교적 상상력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경청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매우 강조합니다. 위로는 하나님께 경청해야 합니다(UP). 안으로는 성도님들의 목소리에 경청해야 합니다(IN). 밖으로는 우리가 섬기는 지역사회에 경청해야 합니다(OUT). 여기에 다른 교회에도 경청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OF). 우리가 공교회성을 지닌 교회의 특징 때문입니다. 이래야 선교적 상상력이 떠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다음세대를 위한 선교적 상상력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서, 미국에서 모범적인 교회로 손꼽히고 있는 Asbury 교회의 선교적 상상력에 대해서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Asbury 교회는 다음세대를 위한 선교적 상상력에 크게 힘을 썼습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께 경청, 교회의 다음세대, 지역사회, 다른 교회에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배를 Traditional 예배와 Contemporary 예배로 나눴습니다. 즉 전통적인 예배와 현대적인 예배입니다. 현대 예배에는 바로 젊은이들을 위한 예배입니다. 우리 나라도 11시 예배는 전통예배, 오후 예배는 현대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그런 게 아닙니다. 아예 현대 예배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건물을 새로 지었습니다. 이렇게 하는데 성도들이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현대 예배는 전통 예배와 똑같은 시간에 드립니다. 어떤 분들은 비판할 수 있겠지만, 1500~2000명 출석했던 교회가, 현대 예배를 설계하고 나서는 5천명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2) 구심적 교회에서 ‘구심적+원심적 교회’로

이제 교회는 구심적 교회에서 구심적+원심적 교회로 가야 합니다. 바이러스 사태가 사회적, 교회적으로 준 가장 큰 충격은 비대면적 사회의 도래입니다. 대면적이고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를 본질로 하는 교회에게 있어서 비대면적 사회의 도래는 충격적입니다.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구심적 교회)의 구호는 하루 아침에 반사회적 구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서길원 목사님이 쓰신 책 <다시 교회가 뛴다>에는 “1 만명이 모인다는 말에는 거꾸로 흩어진다는 의미도 있다. 교회는 모이는 교회도 돼야 하지만 흩어지는 교회도 돼야 한다. 1 만명이 각자의 삶의 현장으로 파송된 목회자가 되어 자신의 삶을 작은 교회로 만들어야 한다. 심산궁곡 구석구석 들어가 빛을 발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흩어지는 교회가 바로 선교적 교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전통 교회’(빛가온교회처럼)가 흩어지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심적인 교회와 원심적인 교회를 같이 해야 합니다. 구심적인 교회에서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은혜와 체험과 사랑과 섬김이 있는 공동체성을 가지고 원심적인 교회로 흩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작은 소그룹 교회를 성장시켜야

존 웨슬리 목사님은 교회 안의 작은 교회를 이미 말하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는 무엇일까요? 바로 소그룹입니다. 존 웨슬리는 감리교회를 시작할 때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서적 성결을 성취하기 위해 소그룹을 사용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온라인이 급부상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의 마음 안에는 사랑에 대한 갈망, 코이노니아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는 이유도 그 마음에 외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리교회도 그 사랑과 작은 그룹 속에 사랑이 있었습니다. 바로 감리교인 여러분을 통해서 잃어버린 영혼들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에즈베리교회에도 소그룹. 스몰 그룹이 있습니다. 스포츠 그룹, 신학적 공부하는 그룹, marriage 그룹라고 해서 결혼과 관련된 그룹, 싱글맘 그룹 등 다양한 그룹이 있습니다. 각자가 스스로 선택합니다. 저는 리더십바이블스터디 그룹에 들어갔습니다. 경영자들끼리 모이는 그룹입니다. 수요일 아침 7시 30분에 모입니다. 그룹에 따라 모임 장소와 시간은 다양합니다.

영국의 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버풀에서 그래도 대형교회를 담당하시는 필 포터라는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 목사님은 자신이 성도에게 제자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성도에게 “교회 안에만 머물지 말고 세상의 일상으로 나아가라.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천하고 복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리버풀 경찰서의 고위 관리였던 리더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분이 경찰서에 가서 스몰 그룹을 조직해서 지금은 경찰서 안에 교회가 생겼습니다. 일상의 영상화, 일상을 통한 복음의 전파의 좋은 사례들입니다. 

4) 쉬지 않고 기도하는 교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공동체성이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기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에즈베리교회 스토어하우스에는 24시간 기도합니다. 영적으로 목말라하는 이들이 이 기도를 통해 영적으로 회복됩니다. 에즈베리교회의 웨덜리 목사는 기도를 끊임없이 하는 분이었는데, 3박 4일간 수련회에 가서 같이 기도할 정도였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5) 감동의 스토리를 쓰는 교회

감동의 스토리를 써야 합니다. 미래학교요, 선교학자인 레너드 스위트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수 영성>이라는 책에서 “교회는 지역사회와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감동적이 이야기를 만드는 ‘이야기 꾼‘(story teller)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코드는 감성이기에 감동을 주는 교회가 부흥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네 종류의 전도 대상이 있습니다. ‘주변인’, ‘열린 가나안 교인’, ‘교회에 올 가능성 없는 사람’, ‘닫힌 가나안 교인’입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일수록 전도 대상자는 후자 쪽으로 가게 됩니다. 초기 교회의 전도 대상은 주변인이 많았습니다. 주변인은 교회에 대해 긍정적이기 때문에 예배에만 초대해도 전도로서는 충분했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는 아현성결교회인데 성결교에서는 106년이 된 교회로 두 번째로 오래되었습니다. 이 교회를 세운 이유는 신학생들의 전도훈련을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전도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심지어 30년 동안 전도한 80대 할머니 권사님도 계십니다. 그런데 이 분의 말씀이 “지금은 노방전도해도 대상이 없다. 이제는 제가 전도에서 은퇴를 해야 할 때인 것 같다”고 자조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은 교회에 나올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는 닫힌 가나안 교인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노방전도 방법보다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것처럼 관계전도인 나선형 전도 방법을 병행해야 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쉼 없는 전도를 통해 승리해 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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