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은희 목사
우은희 목사

대학을 졸업하면 청년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든 취업을 하든 아무튼 예산과 예향교회를 떠났다. 그들에게 제2의 고향, 예산이 그립거나, 졸업 후 모임이 있어서 예산을 방문하게 되거나, 경조사들에서 만나게 되면 슬슬 나의 나이를 묻곤 했다.

"아 그때, 저희들이랑 만나셨을 때 나이가 지금의 제 나이네요?"

"교회 시작하셨을 때가 그 나이셨어요? 제 나이가 그 나이네요. 에에 어리셨구나~"

"응, 전도사라고 목사라고 내가 꼬마들 모아놓고, 청년들 모아 놓고 대장 노릇을 좀 했지. 흐흐흐"

이런 대장 노릇에도, 순한 두 가정의 성도들도, 해마다 혹은 2~3년마다 바뀌는 청년 성도들도 "왜 이렇게 하세요, 왜 이렇게 안하세요.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하지 않았다. 이게 깊이 몸에 배었는지 토의와 대화를 통해 뭔가 새롭게 발전적으로 바꾸어 가는 일의 경험이 거의 없고 나의 계획을 굽히거나 조정해야 되는 상황에서 주저하게 되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스스로 통제하지 않으면 굳이 지적하거나 불려 들어가 ‘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시스템이 아니어서 단정한 옷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정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주일 낮예배 외에는 정말 편한 복장으로 다녔다. 주로 ‘티셔츠, 청바지, 운동화’, 이런 것에서 다소간의 변화를 겪게 된 사연이 있다.

성탄절 예배와 식사, 선물들을 준비하느라 지금은 목사가 된 춘국 형제의 차를 얻어 타고 왕복 1차선 도로를 지났다. 정말 찰라에 우리 차가 앞차의 뒤꽁무니를 그냥 ‘콩’하고 들이받았다. 정말 ‘콩’이어서 양쪽 차량 모두 흠 하나 없이 멀쩡한 상황이었지만 한편으로 차를 세우고 나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나와 춘국은 머리를 숙이고 인사했다. 앞쪽 차량의 아저씨가 뒷목을 잡고 나오셔서는 나와 춘국 형제를 번갈아 보았다.

"조심하셔야죠. 더구나 연로한 어머니 모시고 다니는데. 조심해서 다니세요. 양쪽 차가 다 괜찮으니 갑시다."

춘국은 제대 후 복학하여 4학년, 나보다 많아야 열한 두살 차이나는 왠만한 집의 막내 동생같은 나이였다.

"아니 어머니 아니고, 목사님..."이라고 말하려는 춘국의 입을 막고, 그래 내가 열 댓살 더 나이 들어보이는 어머니인들 어떠리, 이 죄송한 상황을 ‘연로한 어머니 되어’ 잘 넘어가 보자. 다시 차에 앉아 거울에 비쳐 보았다. 내 얼굴, 심난한 내 머리와 옷, 그리고 내려다 보았다, 나의 신발.

그 즈음, 지금은 은퇴하신 오산교회 정인자 목사님을 방문하였다. 정목사님과 함께 친구처럼 지내시는 원로 전도사님께서 와 계셨다. 이런 저런 대화 중에 이 전도사님께서 나를 주목하시며 ‘목사의 옷매무새’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교회를 맡는 사람의 옷차림이 ‘그때의 나’와 같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이런 일련의 일로 스타일을 바꿔 보았지만 도로 ‘편한 스타일’로 복귀하였으나 점차로 향상되었지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그렇지,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맡고 있지, 하나님의 자녀지. 이왕이면 단정하게, 최선으로 생기있게 외양도 마음도 가지면 좋겠지. 마음이 중요하지 외모가 중요하냐고, 당연히 마음이 중요하지만 외모도 단정하게 하면 더 좋은 일이겠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주를 위하여 단장도 하자(makeup), 주를 위하여 단정도 (tidiness)하자.

자주 '연로한 어머니'인 저와 함께 다녔던 춘국 형제님이 저기, 저어기에 있네요.(2005년 2월)
자주 '연로한 어머니'인 저와 함께 다녔던 춘국 형제님이 저기, 저어기에 있네요.(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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