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촌교회에서 TBC 성경공부 통해 신앙 성숙

▲차남이 결혼하던 날
▲차남이 결혼하던 날

유교 집안에서 자라나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가 미션스쿨인 중학교에 가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감리교회에서 3대째 믿음을 이어가던 부인(강남준 권사, 숙명여대 영어교육학과 교수)을 만나 믿음이 더욱 깊어졌고 결혼 후 영국 유학생활에서도 감리교회에 출석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공직자 생활을 하면서도 마포 열림교회에 출석하면서 신앙의 깊이가 더해졌다. 하지만, 집과의 거리가 멀어서 고민할 때 강병훈 목사(원로, 남산교회)의 소개로 평촌교회(홍성국 목사) 출석하기 시작해 현재 시무장로로 섬기고 있다.

공직자 생활 30년을 마치고 가천대 부총장(6년)을 거쳐 2019년부터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 법률고문으로 사역하는 노연홍 장로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믿음의 사람’이다. 감리교회 안에 ‘이름 없는 들꽃처럼’ 존재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감리교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자 한다는 기자의 말에 홍성국 목사(경기연회 제13대 감독 역임)가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소개한 인물이다. 전문인으로서 탁월한 견문과 인품을 갖춘 감리교회 장로라며 꼭 소개하고 싶은 분이라고 강조했다.

30년 공직자 생활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청장으로 근무한 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으로도 근무했다. 수시로 찾아 온 ‘부적당한 지시’나 유혹에 언제나 믿음과 양심의 잣대로 판단하고 정도(正道)를 걸었다. 공공의 유익에 위배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대통령에게 직언할 정도로 기독인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고 공직자 생활을 했다. 홍성국 목사(경기연회 제13대 감독 역임)의 ‘TBC 성서연구’에 참여해 공부한 것이 ‘신앙생활의 백미’라며 공직자 생활 때문에 하지 못한 교회 봉사와 TBC 성서연구를 보급하는 일에 매진할 계획이다.  

감리교회가 품고 있는 전문인력으로서 손색이 없는 노 장로의 삶과 신앙생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한다. 인터뷰를 위해 기자가 평촌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했고 예배 후에 담임목사실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평촌교회 홍성국 목사와 주일예배 후에 함께
▲평촌교회 홍성국 목사와 주일예배 후에 함께
▲주일예배를 인도한 홍성국 목사
▲주일예배를 인도한 홍성국 목사

1. 신앙생활 하게 된 과정과 장로 피택

유교적 집안에서 자라나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초등학생 시절, 내가 가고 싶었던 중학교 시험에서 떨어지고 2차로 간 중학교가 천주교 미션스쿨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혜화동 성당에 출석했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다. 가족 중에 제일 먼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은 평탄하지 않았다. 집안의 문제 때문에 정신적인 어려움이 많은데다 성당에 나간다는 이유로 구박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댈 곳은 성당 뿐이었다. 예수님께 의지할 때 평안을 느낄 수 있었고, 성경의 가르침에서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사춘기를 보내고 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믿음이 일취월장했다.

조모로부터 3대째 서울 양광교회(장석주 목사)를 섬기던 아내를 만나면서 믿음이 성장했고, 1999년부터 평촌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며 믿음이 깊어졌다. 홍성국 목사의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 신학과 영성을 배우면서 직분도 받아 장로까지 되었다. 부족한 점이 많음을 알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해 많이 꺼렸다. 홍성국 목사님께서 ‘거룩한 멍에’를 권면하셨고, 기도하는 중에 부족하지만 주님의 뜻을 따르기로 하여 장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2. 인생 여정에서 행복했던 순간들

1983년 제27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된 것을 말할 수 있겠다. 신앙적으로는 2016년 장로로 피택된 순간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게 되면서 삶의 푯대로 삼았다. 가끔 중학교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그 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실패를 모르는 교만,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선, 절대적인 가르침이 없는 방황 등등. 그런 모습 대신 성령의 열매를 갈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기적이다. 최근에 태어난 손녀를 통해 창조의 질서를 알게 하시고, 우리 가족이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3. 아픈 기억들도 있을 것인데.. 인생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어렸을 때 중학교 입시에서 실패한 것이 큰 시련이자 아픔이었다. 당시에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입시 과열의 시대였다. 가고 싶었던 학교에 떨어진 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이후 중요한 시험마다 힘들었다. 어릴 때의 충격이 오랜 기간 힘들게 했다. 그러던 중, 공적인 일을 희망하기도 했고 트라우마를 평생 가져갈 수 없다는 생각에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하려고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군대에 다녀온 후 도전했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성공했다.

어릴 때까지 좋았던 집안의 경제적 상황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매우 어려워졌다. 집안의 가구에 빨간딱지가 붙어서 길에 나와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모습이었다. 집에서 쫒겨나 아버지가 교육시켰던 사촌 누이의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경제적인 상황이 급변하다 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겹쳐서 힘들게 했다. 때문에 대학 입시준비 시기에 방황하기도 했다. 특히 다시 일어나지 못한 아버님의 지친 모습을 볼 때마다 힘들었다. 바로 그때, 나를 안아 주시고 동행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었다. 나로 인해 아버님도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고 우리 가정은 온유와 평화로 덮였다.

▲가족들과 함께
▲가족들과 함께

4. 사회생활 하면서 가장 마음에 두었던 일종의 ‘철학’ ...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은? 

인생의 대부분을 공직에서 보냈다. 공직은 국민을 섬기기 위해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해야 한다. 공직생활을 시작할 때 선친께서 ‘거고사추 지만계일’(居高思墜 持滿戒溢)이란 말씀을 주셨다. 높이 올라갈수록 내려 올 것을 생각하고, 잔이 찰수록 넘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이를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생각하고 공직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공직생활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만약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떠올렸다. 100%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자세를 견지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식약청장과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비서관으로 일할 때 책임이 무거웠다. 식약청은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의약품, 의료기기, 식품, 화장품 등의 인허가와 관리를 맡고 있는 기관이다. 행정의 범위가 넓고, 크고 작은 사건이 수시로 일어나는 곳이다. 고용복지수석비서관은 보건복지, 식약청, 고용과 노사관계, 여성정책 등을 총괄하면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다. 따라서 이때 매순간 솔로몬의 지혜를 구하면서 업무에 임했다. 주님께서 지혜를 주셨고, 생각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기적이라고 할 일들이 많았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많이 느꼈던 귀한 시간이었다. 

▲2011년 5월 5일 중국 식약청 샤오밍리 청장 및 수행원과 함께
▲2011년 5월 5일 중국 식약청 샤오밍리 청장 및 수행원과 함께

5. 평촌교회가 삶에 어떤 의미이며 역할을 하는지? 

영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겨 가족과 함께 몇 년간 영국생활을 하고 1999년에 귀국한 이후부터 평촌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으니 22년의 시간이 됐다. 영국에 가기 전에 출석하던 교회가 집에서 너무 멀었다. 귀국 이후 가까운 감리교회에 다니기로 아내(강남준 권사)와 결정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교회, 무엇보다 목사님이 열심히 공부하면서 바른 영성을 강조하는 교회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평촌교회를 알게 되었고 몇 주간 예배에 참석했다. 어느 주일에 아내가 어릴 때 다니던 교회를 담임하던 강병훈 목사님을 만났다. 강 목사님이 홍성국 목사님과 평촌교회를 자랑하시며 정착하기를 권면하셨다. 홍 목사님의 말씀에서 은혜를 받고 있던 중이었는지라 그 권면에 순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평촌교회와 홍 목사님은 우리 가족 신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바른 목회를 하고자 하시는 점이 존경스럽다. ‘성경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교회가 바르게 서기 위해서는 건전한 신학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성경공부를 통한 신앙교육을 강조해 오셨다. 최근에는 2년간 전교인이 TBC 성서연구를 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시간에 성경 전체를 배웠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체계적으로 신학에 바탕한 성경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신앙이 한층 성숙해졌다. 

장로는 교회의 일을 믿음에 따라 수행하면서 목사님과 인격적 교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사님들도 목회할 때 인간적으로 어려운 문제들이 많을 것이다. 목회자이기 때문에 느끼는 외로움도 있을 것이다. 특히 가정에 어려움이 생길 때 목회자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토로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성도들, 특히 장로와 같은 직분자들이 그런 점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서로 간에 ‘상처받은 위로자’로서 역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6. 국내 초대형 로펌 고문으로서 무너진 교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사회에서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송으로 가기 전에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 교회 내에서 소송이 빈번하고 다툼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많은 경우가 선거와 관련되어 있다. <교리와 장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교리와 장정>이 너무 포괄적이다. 법이라는 것이 현실의 문제를 모두 구체화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재판의 과정을 통해서 중심을 잡아 가는 것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규율의 잣대로서 역할을 하는 법률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입법의회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작업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과업이다. 전체를 다루기 전에 선거와 관련한 규정을 빠른 시일 내에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는 거의 사라진 부정선거가 교회 내에서 일어나고 세습으로 비웃음을 사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7. 지방이나 연회 혹은 총회에서 활동한 경력은? 

경기연회장로합창단의 단원으로 활동했다. 최근에는 코로나와 업무 때문에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회에서는 교회학교 연합회장으로서 실행부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방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회 실행부에 참여하면서 비전교회의 어려움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3년 전, 잘 아는 기업가의 도움을 받아서 몇몇 비전교회의 재정을 도와준 적이 있다. 그 사업이 지속되지 못해 아쉬움을 가지고 있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대로 노력하려고 한다. 

교회에서는 교육국장과 남선교회장의 직분을 맡고 있다. 줌을 통한 영상 학교를 운영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교회학교 살리는 일에 힘을 쏟으려고 한다. 또 담임목사님이 대표회장이신 웨슬리사회성화실천운동본부에서 하는 선교사 숙소 마련 사업, 각막기증 운동, 오병이어 도시락 사업 등이 자리를 잡고 잘 운영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작게나마 동참하고 있다.

▲평촌교회 주일예배에서 기도하는 노연홍 장로
▲평촌교회 주일예배에서 기도하는 노연홍 장로

8. 교회의 장로로서 평촌교회 교우들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은?

건전한 신학을 바탕으로 영성이 살아있는 평촌공동체를 사랑한다.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불신과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이 많지만 우리 교회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감리교회의 신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이런 때일수록 정통신학에 기초해 복음의 바탕에서 바로 선 교회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제 성년이 된 평촌교회의 역할이 중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에서 시행하는 TBC 성서연구가 그 바탕이 되리라 생각한다.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사랑으로 하나 되는 평촌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감리교회와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교회가 되도록 다함께 노력해 가기를 기대한다.

9. 그 밖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족한 사람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는데 담임목사님의 권유와 웨슬리안타임즈의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부족한 생각을 표현했다. 자격이 있어서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서 주님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말씀을 기억한다.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세상의 바쁜 일을 줄이고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내 강남준 권사와 함께 그런 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첫 손녀 유아세례식에서
▲첫 손녀 유아세례식에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후 수습대책 마련을 위해 식약청을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후 수습대책 마련을 위해 식약청을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2011년 5월 4일 중국 질검총국 방문시 책임자와 대담
▲2011년 5월 4일 중국 질검총국 방문시 책임자와 대담
▲2011년 6월 현재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하고 있는 SK 캐미칼 공장 기공식(현재 SK Bioscience로 개명) 
▲2011년 6월 현재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하고 있는 SK 캐미칼 공장 기공식(현재 SK Bioscience로 개명) 
▲노연홍 장로가 집중 전파하겠다고 다짐한 TBC 성서연구 교재
▲노연홍 장로가 집중 전파하겠다고 다짐한 TBC 성서연구 교재
▲노연홍 장로가 섬기는 평촌교회 주일예배 후 전교우들(코로나 이전)
▲노연홍 장로가 섬기는 평촌교회 주일예배 후 전교우들(코로나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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