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웅 감독, 서철 목사에게 동대문교회 담임으로 파송장 전달
서울연회, 감리교회 뿌리인 동대문교회를 이어가겠다는 의지 나타내

 

예배를 마치고 기념사진
예배를 마치고 기념사진

감리교회의 뿌리가 되고 있는 동대문교회를 다시 복원하기 위한 발걸음을 시작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원성웅 감독)는 25일 오후, 왕십리에 위치한 꽃재교회(김성복 목사 시무)에서 '동대문교회 회복 및 동대문교회 백서 발간 감사예배'를 드렸다. 

사회, 나철진 감리사(종로지방)
사회, 나철진 감리사(도봉지방)
성경봉독, 유재승 장로
성경봉독, 유재승 장로

동대문교회는 1892년 스크랜튼 모자가 의료 사역을 하던 볼드윈시약소에서 출발한 교회로, 여성 운동의 교육의 선구자적 역할과 김상옥, 손정도, 현석칠 등 민족 운동가의 산실이기도 했다. 이번에 발간한 백서(이덕주, 최태육, 황미숙 박사 공동 집필)는 이런 내용과 함께 동대문교회의 철거 과정 등을 담았다.

이날 감사예배에서는 나철진 감리사(도봉지방)의 사회로 1부 예배가 시작되었고 210장 찬송을 한 후에 유재승 장로가 '창세기22:1~4/ 역대하 3:1' 을 봉독하고 최애도 장로(동대문교회 원로장로)가 동대문교회 회복을 위해 눈물어린 기도를 했다.  최애도 장로는 ‘동대문남은자교회’에서 끝까지 남아 있던 교인 중 한 명이었다.

최 장로는 "잃어버렸던 동대문교회라는 이름을 되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대문교회! 그 얼마나 그리웁고 그리웠던 이름인지요. 비록 건물은 없어진 빈 터이였으나 우리는 거기에서 십여년 동안을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우리들의 잘못을 회개 하면서 다시 우리들에게 기회를 주시면 열심을 다하여, 또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아버지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라며, "원성웅 감독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서 다시 힘을 얻게 됨을 감사하고 '이 늙은 종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시고 저의 생명을 데려가기 전에 동대문교회의 회복이 될 수는 없겠는지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립니다."라고 동대문교회를 잃은 이들의 아픔을 구구절절담아 하나님께 아뢰었다. 

대표기도, 최애도 장로(동대문교회 원로장로)
대표기도, 최애도 장로(동대문교회 원로장로)
설교, 원성웅 감독(서울연회)
설교, 원성웅 감독(서울연회)

이어서 원성웅 감독(서울연회)은 '예루살렘 성전터와 동대문언덕' 이라는 주제를 통해 말씀을 전하면서, "요즘 우리들의 지도자들이 남의 탓을 하고, 교회 탓을 하고 있다"라는 현실을 지적하며, "예전처럼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기독교인들과 함께 모여 하나님께 기도하여 속히 어려움이 회복되고 치유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하였다. 

이어서 원성웅 감독은 서철 목사에게 동대문교회 담임으로의 파송장을 전달하였다. 서철 목사는 흥인문교회 담임이었는데, ‘동대문남은자교회’의 최애도 장로 등 다수가 합류하고 교회명칭도 ‘동대문교회’로 변경하면서 동대문교회 담임목회자가 됐다.

파송장 전달
파송장 전달
헌금기도, 윤문근 장로(서울연회 남선교회  회장)
헌금기도, 윤문근 장로(서울연회 남선교회  회장)

윤문근 장로(남선교회서울연회연합회장)의 봉헌기도와 유경진 선생과 백진주 교수의 특송 가운데 헌금을 드리고 신현주 총무(서울연회)의 사회로 동대문교회 백서발간 기념식을 시작하였다.
 

백서 발간 기념식 사회를 맡은 서울연회 신현주 총무
백서 발간 기념식 사회를 맡은 서울연회 신현주 총무
발간취지 설명, 이덕주 교수
발간취지 설명, 이덕주 교수

이덕주 교수는 발간취지 설명을 통해 "역사를 공부하면서 동대문교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진다"고 말하며 "보이는 것만 소중하게 여기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잃어버린 원인은 역사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동대문교회의 옛 자료 사진을 보여주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잃어버렸던 역사를 꼭 찿아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시 갖게하는 시간이 되었다.

축사, 유관지 목사
축사, 유관지 목사

이어서 유관지 목사는 동영상을 통해 축사를 하였고 580장 찬송을 한 후에 전용재 감독의 축도로 감사예배를 마쳤다.

축도, 전용재 감독
축도, 전용재 감독
동대문교회 담임 서철 목사 부부
동대문교회 담임 서철 목사 부부


 자료 사진

서울연회 원성웅 감독
서울연회 원성웅 감독

      
동대문교회 복원과 회복에 관한 백서(白書) 출간을 기뻐하며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감독 원성웅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자신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되었고 바벨론에 유배되었던 부끄러운 과거사도 지우지 않고 고백함으로써 자신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선민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들은 아주 작은 나라요 적은 수의 민족이었지만 오늘날까지 세계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민족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민족은 부끄러운 역사는 의도적으로 다 지우려 했고, 어떤 경우에는 자랑스러운 역사마저도 눈앞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쉽게 지워버리는 우를 범하기도했다.

동대문 감리교회의 역사는 우리나라 근대사에 참으로 기념이 될 만한 아름답고 거룩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현재 성급하게 조성된 ‘동대문 성곽 공원’은 사실은 조선말과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 속에서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역사가 펼쳐졌던 감리교회의 성지였다. 1892년9월에 이 언덕에서 예배가 시작 된 후로부터 2014년 3월13일 철거되기까지 123년 동안 동대문 감리교회가 서 있던 이 땅은, 조선 말기에 이 나라에 들어와서 ‘강도 만난 불쌍한 백성’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 역할을 한 스크랜턴 선교사와 그의 어머니 스크랜턴 대부인의 사랑의 의료 사역이 펼쳐진 곳이다. 스크랜턴이 세운 의료 선교 쎈터가 ‘볼드윈 시약소’ 에서 교회로 발전 한 것이 동대문 감리교회이고 릴리안 해리스 기념병원으로 발전했던 의료기관은 이화대학 병원이 되었다. 그리고 평양에서 환자들을 돌보다 순직한 월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의 아내 로제타 홀 선교사에 의해 운영되었던 여자의학강습소는 후일에 발전하여 우석의대가 되고 오늘의 고려대 의과대학의 뿌리를 제공하였다.

 스크랜턴에 이어 동대문 감리교회의 2대 담임 목회자가 된 헐버트 선교사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독립 유공자로 기념되는 인물이다. 그는 일찍이 한국 민족의 우수성을 발견하고 특히 한글의 우수성을 발견하여 주시경 같은 한글 학자가 배출되도록 도왔고, 고종황제의 독립의지가 담긴 밀서를 외국 공관에 전달하는 등 조선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헐버트 선교사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출국된 후 동대문 감리교회의 3대 담임자가 된 벙커 선교사는 동대문을 거점으로 하여 여러 교회들을 개척하고 전도하는 데 힘썼는데, 이 때 세워진 교회들이 용두동 교회, 꽃재 교회, 삼청교회, 우이교회, 두모갓 교회... 들이다. 그 후 삼일 운동 직전에 동대문 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 받은 손정도 목사는 3.1 만세운동의 거사를 도운 후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의정원장을 역임하고 만주로 가서 기독교 정신으로 교회를 세우며 독립운동을 지속하다 순국했다. 일제의 강압통치에 풀죽어 있던 시절 한국인의 용감한 기개를 드러내고 장렬하게 죽은 김상옥 의사도 동대문 교회의 성도였고, 일본군의 성노예로 불행한 인생을 살아 온 것을 고백한 김학순 할머니로부터 여성 인권회복 운동이 출발 된 곳도 바로 이 동대문 교회에서 부터였다.

유감스럽게도 서울시는 이 모든 역사의 진실을 미처 알지 못한 채, 한양성곽의 유네스코 등재만을 위해 급히 서두르다가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한국의 근대사의 보고인 동대문 교회와 그 주변을 ‘갈대가 무성한 허무한 공원’으로 조성하고 말았다. 당시 동대문 감리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짧은 생각으로 교회 이전을 서두르다가, 한국 근대사에 아름답고 감동적인 역사를 간직한 성지를 헐값에 팔고 허무는데 동조한 큰 과오를 저질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뼈아프게 회개하면 되돌리고 회복시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불도저로 밀어버린 어리석은 행위들을 정당화시키려 하지 말고 지혜롭게 되살릴 길을 모색하여 더 늦기 전에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서울특별시 관계자들은 기독교대한 감리회 서울연회와 함께 솔직하고 진실하게, 아름답고 거룩한 역사 복원에 한마음이 되어, 동대문 교회의 옛터와 그 역사를 다시 살려내는 작업에 힘을 모아야 한다. 이 일을 위해 백서 준비에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이덕주 교수와 최태육 박사 등 감리교회의 자랑스러운 역사학자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여러 가지 일들로 분주한 중에도 이 일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인 서울연회 신현주 총무와 열 세지방의 감리사들과 김창겸 연회 간사의 수고에도 감사를 표한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어 마침내 동대문 언덕 성지에 감리교회의 예배당 복원과 더불어 사랑의 역사가 간직된 역사 문화 기념관이 세워지기를 기대하며, 동대문 감리교회의 중건과 역사회복에 관한 백서출간에 성원을 보낸다.

                                                 2020년 10월 25일

서울연회 신현주 총무
서울연회 신현주 총무

편집후기  
서울연회 총무 신현주 목사

129년 전 우리나라가 암울했던 시절, 동대문 지역의 민중들은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하루하루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민중들을 끌어안고 사랑으로 기도하던 선교사들은 섬김과 헌신으로 동대문에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선교사를 비롯한 목회자와 여성, 가난한 교인들은 예배당을 땀방울과 눈물로 적시며 신앙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동대문 언덕과 동대문교회는 그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민들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을 살린 복음의 원천(源泉)이자 생수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동대문교회를 넘친 은혜의 강물은 용두동교회, 꽃재교회, 돈암교회, 우이교회, 한강교회, 각심사교회로 흘렀습니다.

설립 초기 동대문여학교, 동대문소년매일학교, 야간학교를 설립 운영하였으며, 1970년대부터 직업청소년들을 위한 동대문학교도 설립 운영하였습니다. 설립 초기나 1970년대나 모두 가난하고 어려운 청소년들을 지도자로 길러내는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스크랜턴과 스크랜턴 대부인이 설립한 동대문진료소는 이후 거듭 발전하여 오늘의 이화여대 부속병원이 되었습니다. 여성과 가난한 민중을 치료하고 돌겠다는 이들의 꿈이 오늘의 이화여대부속병원이 있게한 동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2014년 동대문 언덕의 예배당이 철거되는 아픔을 겪게 되어 그 귀한 복음의 물줄기가 막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동대문교회를 사랑하는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눈물로 기도하며 회복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37, 38회 연회(의장 강승진 감독)에서 역사 강좌(강흥복 목사)가 개최되었고, 39, 40회 연회(의장 원성웅 감독)에서는 3.1운동 100주년 행사, 동대문교회 성지 회복 식(2019. 3.1), 동대문교회 역사심포지엄(이덕주 서영석 최태육 황미숙 교수)을 통해 동대문교회의 새로운 회복과 중건 및 역사복원을 소망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일련의 노력으로써 동대문교회의 역사를 조명하는 백서를 발간함으로써 동대문교회 역사기념관건축이 추진되는데 큰 힘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백서 발간을 위해서 힘써 주신 이덕주.최태육.황미숙 교수님와 옥고를 보내 주신 김우영 서울시 정무부시장님, 김흥수 교수님, 유관지 목사님, 이주익 목사님께 감사드리며, 짧은 제작 기간임에도 기쁨으로 수고해 주신 태영문화사 반영제 장로님과 수고해 준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동대문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 모여 동대문 언덕에 중건되길 꿈꾸는 동대문교회 역사기념관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기쁨을 나누게 되는 그 날이 오기를 희망하며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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