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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교회 담임목사 취임식 때 있었던 일이다. 뒤늦게 신학교를 나와 목사안수를 받고 담임자로 취임하는 목사를 소개하며 감리사가 말했다. “아무개 목사는 참 열정과 인내가 대단한 사람입니다. 나이 50세가 넘어 신학교에 입학해서, 단독목회를 하고 뒤늦게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른바 늦깎이 목사입니다.”이렇게 담임목사를 소개하자 좌중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아뿔싸!” 하고 가벼운 한탄을 했다. 왜냐면 '늦깎이'란 단어의 오용(誤用)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어떤 일에 늦게 뛰어들어 이룬 사람을 가리켜 ‘늦깎
정학진의 문화산책
정학진 목사
2021.11.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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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좀 잘 쓰지...... 글씨가 이게 뭐야? 완전 개발새발이네....”나는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쓰지 못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책 사인회를 할 때면 그게 늘 걱정이다. 어떤 이는 예술적이라고 추켜 세워줄 때가 있지만 빈말이란 걸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럴 때면 '글씨 잘 쓰는 법을 어릴 적에 좀 배워놓을 걸...' 싶을 때가 많다. 개발새발. 내가 쓴 글에 노상 따라붙은 말이었기에 나는 이 말이 표준어인 줄 알았다. 형편없이 어지럽게 쓴 글씨는 개(犬)와 새(鳥)가 쓴 글자인 양 생각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말 앞
나의 목회
정학진 목사
2021.09.2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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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 단어 앞에 ‘a'나 ’an‘이 붙음으로 단어의 뜻을 모두 뒤집는 말을 조금만 더 공부하려 한다. 현재 한국의 K-Pop을 이끌며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의 맏형인 이 작사, 작곡하고 솔로로 부른 노래가 Abyss 이다. 지난해 자신의 생일을 맞아 팬들을 위한 선물로 공개한 이 곡은 ‘번 아웃’ 되어 다 내려놓고 싶었다던 경험을 살려 만든 노래라고 알려져 있다.이 제목의 해석은 ‘나락, 심연, 혼란’ 등을 뜻하는 말이라고 전했다. “숨을 참고서 나의 바다로 들어간다 간다. 아름답고도 슬피 우는
정학진의 문화산책
정학진 목사
2021.09.1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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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 어떤 단어 앞에 a가 붙으면 뒤에 나오는 모든 단어를 부정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신론(神論)’을 theism이라 하는데 앞에 a가 붙어 atheism이 되면 ‘무신론(無神論)’이 되고, 자른다는 뜻의 tom앞에 a가 붙어서 atom이 되면 ‘더는 자를 수 없는’이란 뜻의 원자(原子)가 된다.공산주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가 ‘아나키스트 바쿠닌’을 맹비난한 바 있듯이, 흔히 공산주의보다도 더욱 좌익에 위치한다는 anarchism(무정부주의 無政府主義)도 ‘사회통치체제’를 뜻하는 archism 앞에 an(없다)란 단어
정학진의 문화산책
정학진 목사
2021.08.3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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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운영하는 집사님 댁을 찾았다. 주일에 빠지지 않기를 권면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 “죄송해요. 목사님. 절대 빠지면 안 되는데.... 요즘 워낙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서요...” 우리가 흔히 쓰는 속담 중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을 “눈 깜박거릴 시간도 없이 바쁘다” 라고 대충 예상한다. 그런데 이 말의 본뜻은 맞는 걸까?만약에 그렇다면 왜 눈코라고 했을까? 코는 뭘까? 코를 뜰 새 없이 바쁘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눈을 뜨지 못하고 코로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정학진의 문화산책
정학진 목사
2021.08.1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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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료, 숙박비, 입장료 포함 방콕 16만원! 동경 22만원!’요즘은 잘 볼 수 없지만 코로나 이전엔 심심찮게 보아왔던 광고다. 광고만 봐도 일상을 훌훌 털고 여행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게다가 가격대도 착하지 않은가. 그러나 단순히 싸다는 이유로 이런 상품을 선택한다면 현지에 도착하여 땅을 치며 후회할지 모른다. 해외여행의 고질적인 병폐로 알려진 바가지 옵션 관광이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한국말을 곧잘 하는 현지 가이드가 여러 이유로 팁을 요구하고, 억지로 끌려 다니는 옵션이 하루에 두세 개도 넘는다. 쇼핑이나 팁 강요
이야기
정학진 목사
2021.08.0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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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서로 퀴즈를 내고 맞히기를 반복했다. 어떤 남자 패널이 틀린 답을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한참을 신중하게 듣고 있던 여성 사회자가 말했다. “틀렸습니다. 역시... 알아야 면장을 하죠.”모두가 웃었고 그 패널은 머쓱하니 자리에 앉았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 어떤 사실을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을 때, 혹은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비웃을 때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면장이 그 면장(面長)일까?한 번만 깊이 생각해보자. 왜 하필
나의 목회
정학진 목사
2021.07.30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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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고교 시절에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많이 썼던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써왔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고 사용한 듯하다.“까불면 골로 갈 줄 알아.”“아이쿠, 자칫하면 골로 갈 뻔 했네.”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사용했거나 TV나 영화에 보면 자주 나온다. 그런데 정작 “골로 간다”에서 ‘골’은 무슨 뜻일까?① 누구는 골짜기의 준말이라고 한다.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한시(漢詩) 중에 ‘幽蘭不以無人息其香’이란 시가 있다. “깊은 골에 핀 난초는 사람이 없다 하여도 그 향기를 멈추지 않는다.”란 뜻이다. 여기서 골은 골
나의 목회
정학진 목사
2021.07.19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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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 여행 중 갑자기 놀랄만한 일이 발생했다. 그때 어느 중견 목사님이 외쳤다. “어이쿠, 깜짝야. 자칫하면 애 떨어질 뻔했네....”사람들은 박장대소했고 그분은 보기 좋게 나온 뱃살을 쓸어 담으며 겸연쩍어 했다. 그런데 여기서 “애 떨어질 뻔 했다.”는 무슨 뜻일까? “아기가 떨어지는” 즉 낙태(落胎)라고 잘못 아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여기서 ‘애’는 우리가 말하는 그 ‘애’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애’는 옛날부터 간과 쓸개, 창자를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특히 이런 경우에 “애 떨어질 뻔 했다.”는 말은 “간 떨어질
나의 목회
정학진 목사
2021.07.10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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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개판 5분전이군!” 우리는 흔히 이런 표현을 자주 접한다. 이런 말은 언제 쓰는가? 정리정돈이 안 되어있거나, 혼란스러울 때, 심란스럽거나 맘에 안 들 때 이런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그렇게 어지럽거나 혼란스러우면 ‘개판이다!’라고 하지 왜 ‘개판 5분 전’이라 했을까? 개판이면 개판이지 ‘개판 5분 전’은 또 뭐란 말인가? 이 말의 원래 뜻은 다르다.한국전쟁이 한창이던 6.25 때 미군부대에서는 한국난민들이나 가난한 이들에게 배급을 나눠줬다. 그런데 그 당시는 질서라는 게 전혀 없었다. 줄을 서는 것도,
이야기
정학진 목사
2021.06.29 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