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 학술 세미나 개최
손정도기념사업회·윤주경 의원 공동주최-손정도 목사의 역할 밝혀 

지난 11월 26일에 개최한 손정도 학술 세미나 장면
지난 11월 26일에 개최한 손정도 학술 세미나 장면

애국지사로서 독립운동가인 손정도 목사에 관한 학술세미나가 지난 11월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사)손정도기념사업회(대표회장 이철 감독회장), 윤주경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국가보훈처, 기독교대한감리회가 후원한 이번 세미나에서는 임시정부 초기 역사와 손정도 목사의 역할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됐다.

이날 발표자는 동아시아 미래연구원 원장인 김승일 박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성립 전후, 해석 손정도 선생의 활동과 공헌’이라는 주제로, 고신대 석좌교수이자 대한민국역사외미래재단 이사장인 김형석 박사가 ‘역사적 인물 손정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그는 기독교사회주의자인가, 기독교민족운동가인가?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또 전 한성대학교 총장인 윤경로 박사가 논찬자로 나섰다.

김승일 박사는 발제를 통해 해석 손정도 목사의 기독교적 특징에 대해 “종교적 차원의 구원이나 현실 구복적 성격에서 벗어나 당시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민족과 나라사랑, 그리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독립사상으로 연계되어 나타나는 ‘민족 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승일 박사
김승일 박사

김 박사는 이런 사상적 특징을 7가지로 나눴다. 그 특징을 보면, ① 성경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통해 미래에 대한 낙관적 희망을 지녔고 ②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기초해 민중을 계도했고, ③ 문제의 원인과 발단 및 해결책을 자신의 내적 요인 곧 자기 반성과 자신의 회개를 통해 극복했으며 ④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자기 헌신과 희생 즉 이타적 삶을 실천할 때 자기도 잘 살 수 있다는 복지사회 건설에 바탕을 둔 ‘기독교 사회주의’를 주창했다고 보았다. 또 ⑤ 따라서 믿지 않는 이방인이 구원을 받을 정도로 국민의 인격 갖추어져야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하면서 기독교적 인격자가 될 수 있도록 수행할 것을 강조했다는 점 ⑥ 덕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망하게 됨으로 개인의 덕을 키워 그것이 공덕심(功德心)으로 이어지게 하여 국민 및  인류 전체가 행복을 얻도록 해야 한다는 점 ⑦ 자신 희생을 통한 나라를 구하라는 정신을 강조했다는 점을 들었다. 

김승일 박사는 “실질적으로 해석은 당시의 현실에서 우리 민족이 거듭날 수 있는 필요한 정신적 요소였고, 이것이 갖추어져야만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나라의 독립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며, “이러한 기독교 사상이 바탕이 된 그의 계몽 사상은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직접적인 동기를 가져다주어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성인으로서의 지혜를 통해 실천적 행동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었다”라고 밝혔다.

손정도 목사는 임시정부를 설립하는데 크게 공헌하였을 뿐만 아니라 임시정부를 이끌어가는 데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파벌 간 투쟁이 격화되었을 때 중재하는 역할도 했으며, 1921년 교통총장으로서 독립자금을 끌어오는 역할을 활발히 했다. 베이징에서 감리교 동양선교총회를 열게 해 적극적인 지원을 유도하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그리고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보위하는 외곽단체와의 활동도 이어갔다. 대한적십자회의 재건과 의용단의 조직, 한국노병회의 발기·홍사단 원동위원회에서의 활동 등이다. 해석은 이들 단체의 발기와 설립, 그리고 회장을 담임하며 조직을 주관 또는 주도해 나갔다.

김승일 박사는 “이런 해석의 역량이 임시정부 내에서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해 주는 것이지만, 일본 형사들이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에 의해 임시정부나 임시정부 내 요인들이 타격을 받지 않도록 자신과 관련되는 자료는 철저히 없애버렸기 때문에 그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게 되어 그동안 연구 대상에서 멀어지게 된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라고 말했다.

김형석 박사는 손정도 목사가 기독교사회주의자라는 평가에 대해 오류를 지적하고 기독교민족운동가로 불리는 것이 맞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형석 박사가 지적하는 오류들을 살펴보면, 2014년도 손정도 목사 기념사업회가 발간한 「애국지사·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의 생애 재조명」이라는 책자에서 “(손정도)는 숭실중학교 재학 중 중학교 선배인 김형직과의 두터운 친분 관계를 형성했다. 김형직은 후일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의 독재자 김일성의 생부였다”는 기술이었다. 김형석 박사는 이것은 명백한 오류로 손정도 목사는 1882년생이고, 김형직은 1894년생이었으며, 숭실중학교도 손 목사가 7년 선배가 된다는 점을 밝혔다. 

김형석 박사
김형석 박사

또 손원태 회고록 「내가 만난 김성주-김일성」(2020)에서 김일성이 손원태에게 말한 부분에 “우리 아버지(김형직)는 105인 사건 때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것은 전혀 기록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평양 숭실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손 목사를 잘 알고 있었던 같다”는 김일성의 발언도 신뢰하기 힘들다고 했다. 김형직이 숭실중학교에 다니던 1911년부터 1913년 어간에 손정도는 중국 하얼빈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다가 진도로 유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 알고 있다’는 말은 그의 이름을 많이 들어서 잘 안다는 뜻이지, 직접 교제를 나누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손정도 목사는 3·1운동이 발발하는 데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도 밝혔다. 즉 3·1운동이 일어난 때 손정도 목사는 중국으로 떠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3·1운동을 기획했거나(「해석 손정도의 생애와 사상 연구」-김승일 김창수 공동 저술),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 또는 손정도 목사의 상해 망명이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기록(「손원일 전기」-홍은혜 저)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손정도 목사가 서울에서 목회자로 활동할 때, 그의 설교를 듣고 감화받은 교인들이 만세운동에 앞장섰다는 간접적인 역할만 있을 뿐이다. 그의 사명은 3·1 운동이 아니라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이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신민회와의 관계에서, 1909년 서울에서 상동교회를 출입하던 시설과 1910년 진남포에서 전도사로 시무하면서 교육 계몽하던 시절이라는 두 가지 주장이 있지만, 가입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곧이어 그가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었고 하얼빈에서 한인교회를 목회하던 중 ‘가쓰라 암살모의’ 혐의로 체포, 국내로 압송된 것은 신민회와의 관련성 때문으로 판단된다고 근거를 내세웠다.

손정도에게 있어 상해에서의 5년은 그의 항일 민족운동에서의 전성기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 임시정부 교통총장, 대한적십자회 회장, 상해한인교회 담임목사, 인성학교 교장, 의용단과 노병회 창설자로 활동하며 1920년대 항일독립 운동사에서 길이 남을 업적을 쌓았다. 그러나 이러한 직책과 역할은 자신이 추구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추대받고 떠밀려서 맡게 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역할에 응하면서 살았던 결과다. 김형석 박사는 이것이 가능케 한 것이 손정도의 걸레철학이라며, “이 걸레철학은 후대의 정치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역사적 교훈으로 반드시 조명이 되어야 과제”라고 치켜세웠다.

또 김일성이 손정도 목사와의 인연을 주장한 부분(김일성이 길림감옥에서 투옥했을 때 손 목사가 옥리에게 뇌물을 주어 구했다는 부분, 손 목사의 맏딸 손진실과 윤치호의 동생 윤지창의 혼사를 의논했다는 부분)에서 날조에 가깝다고 밝히고 있다. 김일성은 길림감옥에 투옥되지 않았을 뿐더러, 49세의 손정도 목사가 18세의 김일성에게 딸의 혼사 문제를 의논했다는 자체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손진실은 외삼촌 박인준을 따라 미국 유학 중 외삼촌의 소개로 윤지창을 만나 결혼했다. 김형석 교수는 “역사학계와 기독교계에서 사료에 대한 아무런 검증없이 김일성 회고록에 기초한 연구 성과가 주류를 이뤘기 때문으로 성찰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형석 교수는 이덕주 교수가 말한, “손정도 목사를 기독교사회주의로 정의하고 통일신학의 기반을 모색하는 것은 미완성의 가설일 따름이고, 현시점에서는 이제까지의 연구 성과에 기초하여 기독교민족운동가로 결론짓는 것이 객관적이고 타당한 판단이다”라고 강조했다. 

윤경로 박사
윤경로 박사

이에 대해 논찬자인 윤경로 박사는 “손정도의 역사적 평가는 ‘기독교민족운동가’의 면모와 동시에 ‘기독교사회주의자’의 성향을 함께 두루 갖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라며 “그가 애써 실천하려했던 이상촌운동과 농민호조사운동 등은 사회주의적 성향을 가미한 기독교사회주의적 민족운동의 실천적 운동으로 보는 것이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이해가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반론을 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손정도기념사업회 대표회장이기도 한 이철 감독회장이 마태복음 16:24절을 본문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이 감독회장은 “손 목사님의 애국은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열매로 나온 것”이라며 “참 신앙의 결론으로 세상을 사랑한 것이며 통합적인 정신을 가지고 폭넓은 사랑을 가진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결과의 열매”라고 말했다.

이철 감독회장
이철 감독회장

이 감독회장은 “손 목사님이 걸레처럼 살아오신 것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을 잘 따르고 말씀대로 살려고 결심하고 따르는 신앙의 결과이고, 그 분의 제1차 목표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는 것”으로 “예수의 참 제자가 되려고 했기에 인권을 내려놓은 것. 그랬기 때문에 국가의 어려움, 백성의 어려움을 위해 십자가를 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손 목사가 가졌던 신앙과 정신이 오늘에도 빛나고 있으며, 감리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교파를 넘어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서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외에 정진석 국회부의장은 영상으로 인사하면서 “손 목사님의 발자취를 깊이 밟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고, 윤주경 의원은 “손 목사님의 애국과 신앙을 되새기는 이런 세미나는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손명원 공동회장은 “이 자리는 손정도 목사님의 철학과 행동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자리로서, 한 사람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과 행동이 드러나서 배우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연회 이광호 감독은 기념식 기도로, 장로회전국연합회 회장 유완기 장로는 폐회기도로 세미나 개최를 축하했다.

국민에 대한 경례
국민에 대한 경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이철 감독회장(사진 왼쪽)과 이광호 감독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이철 감독회장(사진 왼쪽)과 이광호 감독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개회사를 하고 있는 이철 감독회장
개회사를 하고 있는 이철 감독회장
기도 중인 이광호 감독
기도 중인 이광호 감독
축사하고 있는 윤주경 의원
축사하고 있는 윤주경 의원
사회를 맡은 이강전 상임대표
사회를 맡은 이강전 상임대표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대독 중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대독 중 
환영사를 하고 있는 손명원 공동회장(지사 장손)
환영사를 하고 있는 손명원 공동회장(지사 장손)
기념 촬영 중
기념 촬영 중
세미나 사회를 맡은 김홍석 공동대표
세미나 사회를 맡은 김홍석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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