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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에 반환점을 돌았다. 그동안 연재가 교회를 이해하는 데 추상적인 내용이었다면, 남은 연재는 실용적인 내용이 된다. 13~18회(교회의 환경·문화·과정·자원·리더십 그리고 교회에 감춰진 이면의 역동력)는 교회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틀을 제공하며, 나머지 6회(19~24회) 교회의 선교에 관한 내용을 소개한다. 먼저 교회가 위치하는 지역사회인 환경(ecology)이다. 여러분이 지역사회를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도보로 교회 주위를 다녀보면 알 수 있다. 네이버나 다음에 있는 지도를 따라 걸어보라. 도보로 출석하는 교인처럼 그들이 어떤
Linus의 교회 이야기
이성우 박사
2022.12.30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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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신앙공동체 형성)에서 자신을 지켜준다는 믿음에 의해서 공동체가 형성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공동체에 소속하면서 교인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교회가 지켜준다는 믿음에 있다. 그런 믿음을 가진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무엇 때문에 신앙공동체를 소속하려는가? 생명이나 질병은 병원이 지키고, 동산이나 부동산은 법이 지킨다. 믿음은 무엇이 지키는가? 사람은 누구나 믿음 체계가 있다. 기독교가 한국에 전파되면서 토착적 믿음 체계로 만들어졌다. 한국의 기독교는 서구와 다르고, 한국에 의해 전파된 지역의 그것도 다르다. 그것은 사회 안에서 오
Linus의 교회 이야기
이성우 박사
2022.12.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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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기고 글들(신앙이랑, 왜 신앙인가, 삶의 바탕인 신앙)에서 신앙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자신을 지켜내는 힘이라고 했다. 우리는 힘으로 스스로를 지키며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살아간다. 또한 질투하고 갈등하며 배제하고 싸우며 살아간다. 힘없는 사람이 없으며 모두 힘을 지키려는 의지(때론 욕망)에 따라 사랑과 원망이 나눠진다. 우리는 힘을 지키려 애쓰지만, 혼자는 늘 한계에 직면하고 집단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개인에서 집단으로 작은 집단에서 큰 집단에 속하는 일원이 되려 한다. 그럴 때 집단과 규모가 자신을
Linus의 교회 이야기
황기수 기자
2022.11.15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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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학생 시절 절친한 선배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다. 그는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청년들에게 교회의 영향력이 미치는 거리에 관해 물었다고 한다. 사연은 교회 부근에서 흡연한 청년으로 불거진 문제였는데, 청년들은 교회 건물이 보이지 않은 곳이라 대답했다고 한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늘 마음에 담고 있었다. 청년들의 말처럼, 교회 건물이 보이지 않는 곳이라는 말에는 어떤 함의가 있을까? 그것은 교회의 영향력에 관한 고민거리다. 지역에서 제법 큰 교회인지라 교인도 많았고 건물 또한 컸었는데, 교회가 미치는 영향력은 멀었으리라 짐작한다. 교회
Linus의 교회 이야기
이성우 박사
2022.11.0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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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분석하는 틀을 소개한다. 신학에서 논하는 교회론이 아니지만, 독자들이 교회에 관해 알고 있는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틀이라 여겨도 될 듯하다. 상황적 연구, 기계적 연구, 유기적 연구, 끝으로 상징적 연구. 이것은 홉웰(James F. Hopewell)이 쓴 Congregation: Stories and Structure 2장에 담긴 내용으로 간략하게 소개한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거시와 미시가 있고 거시에는 기능론과 갈등론으로 나눈다. 미시에는 상징론이 있다. 상황적 연구와 기계적 연구는 기능론으로 그리고 유기적
Linus의 교회 이야기
이성우 박사
2022.10.1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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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교회에 관한 이야기해보자. 세 번에 나눠 ‘교회의 필요성,’ ‘유기체인 교회’ 그리고 ‘영적 보루인 교회’를 소개한다. 이것은 신학적 설명이 아니고 독자 여러분이 익히 알고 있는 기존의 개념에서 벗어난다. 여러분은 다름을 너그럽게 이해해주길 바란다. ‘우리네 삶에서 교회는 있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넓게 말하면, 삶에서 종교의 필요성을 묻는 물음이다. 종교인의 처지에서는 종교의 필요성은 당연한 물음이겠으나,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도 당연한지 반문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럴 때, 물음은 제도권 종교에서 벗
Linus의 교회 이야기
이성우 박사
2022.09.30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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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두 글(신앙이란, 왜 신앙인가)을 읽은 독자라면, 신앙에 관한 이야기가 생경하다고 여겼을 듯하다. 신앙을 자기에게 손해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 되지 않게 만드는 힘,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지키려는 작동을 신앙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당하긴 한지 의아해하리라 본다. 그런 힘을 신앙이자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도덕적 원리라니? 선뜻 이해되지 않은 내용이지만, 우리가 힘을 가지려는 이유는 알겠으나 굳이 그것을 종교적 개념인 신앙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하리라 여겨진다. 따라서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사는 이유는
Linus의 교회 이야기
이성우 박사
2022.09.15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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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기고 글(신앙이란)에서, 자신에게 손해나지 않기를 원하는 인간의 본질(이기)적 속성에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힘을 신앙이라고 정의하였다. 타인에게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고 타인도 동등한 양보하는 행동이 공존하는 영역에서 교회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힘을 신앙이라고 정의하는가?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왜 신앙을 가지고 사는가? 이것은 다음 기고에서 이야기하겠다. 힘으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힘이 아니다. 폭력을 주제로 하는 수많은 영화를 보면, 자신을 지키는
Linus의 교회 이야기
이성우 박사
2022.08.3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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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회(신앙이란)와 05회(신앙인 이유) 그리고 06회(삶의 바탕인 신앙)는 하나의 묶음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앙을 다르게 설명하는 내용들이다. 기존의 관점에서는 낯설게 여겨지므로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서 읽어주길 바란다. 거래(去來)와 계약(契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는 둘의 차이를 이해(利害)와 신뢰(信賴)로 구분한다. 서로에게 이익이 있어야 거래가 이뤄진다면, 서로에게 신뢰를 쌓아가면서 계약은 성립한다. 이익과 손해에 근거한 거래에는 항상 성취를 가져다주는 기대 만족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언젠가 만족을 가져다주지
Linus의 교회 이야기
이성우 박사
2022.08.15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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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참 많이 달라졌다. 30년 전만 해도 이웃에 사는 이들을 모두 친구로 여기며 알고 지냈다. 동네를 거닐며 인사 나누고 자잘한 이야기를 건네곤 했었다. 교회 문은 늘 열려 있어 다른 교회 교인이라도 부담 없이 들어가 기도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웃은 있으나 친구가 없는 사회로 되어간다. 교회 문은 닫혀있다. 우리는 언제 이웃이 적으로 돌변할지 알지 못하는 환경에 놓여있다. 어디라도 비밀번호로 열 수 있는 자물쇠가 없는 문은 없다. 잠그고 잠긴 상태에 옴짝달싹 못 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늘 두려움에 싸여 한시라도 긴장을
Linus의 교회 이야기
이성우 박사
2022.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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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의 영어 표현은 congregational study다. congregation을 회중으로 번역하여 직역하면 ‘회중 연구’이다. 1990년대 출간한 책들에는 ‘회중학’으로 번역했다. ‘회중’이라는 표현이 이젠 낯설고 그래서 ‘교회학’이라 붙였다. 이런 번역에 문제가 되는 이유는 ecclesiology이다. 그것을 우리 말로 바꾸면 ‘교회학’이므로 번역에서 용어 충돌이 일어난다. 하지만, 조직신학과는 전혀 다른 분야이고 또한 누가 사용하는지에 혼돈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여긴다. 한국 신학교 상황에서 교회학이 설 자리는 없어 보
Linus의 교회 이야기
이성우 박사
2022.07.1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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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기고 글(신앙이란)에서, 자신에게 손해나지 않기를 원하는 인간의 본질(이기)적 속성에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힘을 신앙이라고 정의하였다. 타인에게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고 타인도 동등한 양보를 하는 행동이 공존하는 영역에서 교회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힘을 신앙이란 정의하는가?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왜 신앙을 가지고 사는가? 이것은 다음 기고에서 이야기하겠다. 힘으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힘이 아니다. 폭력을 주제로 하는 수많은 영화를 보면, 자신을 지키
Linus의 교회 이야기
이성우 박사
2022.07.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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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이해하다?』에서 독자가 가장 먼저 고려해야만 하는 개념은 ‘교회’이다. 대다수는 조직신학 혹은 선교학 등 신학의 영역에서 교회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감리회 신앙고백에 있는 교회론을 보면, “우리는 예배와 친교, 교육과 봉사, 전도와 선교를 위해 하나가 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믿습니다”이다. 그것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으나, 지금은 교회론이 있다는 정도로 두자. 여기에서 글쓴이가 제안하는 교회에 관한 이해는 신학적이지 않고 ‘조직체로서의 교회’이다. 두 번째는 ‘사회 안에 있는 교회’이다. 우선 ‘조직체로서의
Linus의 교회 이야기
이성우 박사
2022.07.0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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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웨슬리안타임즈」 황기수 기자의 제안으로 『교회를 이해하다?』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하고자 했었다. 그 무렵 시작한 일들로 1년 넘게 늦춰졌다. 그동안 감리회 행정본부에서 제안한 장정개정에 관한 설문조사를 마쳤고, 올해 6월에 『교회를 세우는 신앙을 찾아서』(샘솟는 기쁨)를 출판했다.『교회를 이해하다?』는 목회자나 평신도 리더가 교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웍샵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여러 학문(미시사회학, 종교사회학, 심리학, 상담학, 교회학, 신학)의 도움을 받아 섬기는 교회의 과거와 현재를 체계적으로 알고자
Linus의 교회 이야기
이성우 박사
2022.06.26 2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