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기도에 전쟁에 끌려간 아버지가 살아 돌아 오셨다..
- 신학만이 의미로 다가온 시절, 새벽기도 힘으로 신학교에 들어갔다..
- 기도는 기독교신앙의 전부, 모든 것이 기도에서 비롯된다..

기독교환경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양재성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양재성 목사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을 보면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얻고 찾고 해결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할 때는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고 금식할 때도 얼굴에 기름을 발라 금식하고 있는 것을 숨겨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적 중에 기적이 기도임을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맞추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독교인이 되고서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만큼 기도는 다양한 길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이는 기도가 하나님과 나를 연결하는 통로요, 내 영혼은 기도를 통해 숨을 쉰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기도가 멈추면 영적으로 죽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기도가 내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청원이기도 합니다. 이 또한 기도의 한 길입니다. 나의 문제, 나의 소원을 아뢰는 일은 종교의 근본 속성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하나님에 대해 구체적으로 모를 때에도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서 올려놓고 기도하셨습니다. 가정의 안전을 구하기도 하고, 자식들의 성공을 빌기도 하였습니다. 아픈 이웃의 치유를 위해 비는 등 참 많은 소원들을 아뢰었습니다.

지극함으로 아뢴다면 이 또한 훌륭한 기도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잘못하면 기도가 거래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초년 신도들에겐 거래도 배움의 길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거래는 하나님을 상대화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이용하게 됨으로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자신도 교회도 세상도 망치는 일입니다.

와중에 다시 기도를 생각하는 소중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하의 기도 요청입니다. 지난 주일저녁 인하가 오더니 내일부터 3일간 시험이라며 내일 아침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분주하게 등교를 준비하더니 기도해 달라고 다가옵니다. 인하를 의자에 앉히고 인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한참을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고 하자 "아멘"이라고 응답합니다. 뭔가 행운을 잡은 듯 신나게 나가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중학교 다닐 때가 생각났습니다.

교회를 지나 한 참을 가야 하는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늘 교회를 들러 기도하고 학교에 갔고,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교회에 들러 기도하고 집으로 오곤 하였습니다. 그 일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깊이 천착하게 했고 이렇게 목사가 되게 했으니 말입니다.

내 기도의 원형은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1951년 8월에 시집 오셨고 아버지가 그 해 11월에 군에 끌려 가십니다. 6.25 전쟁 통이니 참 위험천만했습니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어머니는 당신 스스로 동네에 있는 교회를 찾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가족이 기독교와 상관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어머니는 군에 입대한 아버지의 무사귀환을 위해 기도하셨고 그 기도 덕분에 아버지는 살아서 돌아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무사귀환하면 당신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셨습니다. 평생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셨습니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늘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셨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늘 새벽에 기도하러 교회에 나가셨습니다. 어머니에게 기도는 그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는 버팀목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능력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어머니의 기도는 능력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어머니의 기도 덕분인지 나는 신앙이 자랐고 신학교에 가고자 했습니다. 당시에는 신학이 아니면 다른 그 어떤 학문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신학을 반대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 기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교회 가서 4시간씩 기도하였습니다.

드디어 원서를 접수하고 면접을 보는 날이 왔습니다. 기도를 통해 확답을 얻고 집에 들어서니 아버지가 물으셨습니다. “어쩔 셈이냐?” “아버지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신학의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신학교이니 내겐 참 벅찬 길이었습니다.

학교에 다녀온 인하는 전화를 걸어 시험 성적을 전해 줍니다. 과학은 100점, 영어는 한 문제 틀려 97점입니다. 대만족입니다. 시험이 공부한데서 많이 나왔다며 은근히 기도 덕분임을 시사해서 기분은 좋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도 인하는 기도를 부탁합니다. 진심을 담아 기도해 주었습니다. 지방 출장 중이라 당일은 시험결과를 듣지 못했습니다. 지방에서 맞은 수요일 아침입니다. 인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역시 기도 부탁이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전화로 기도해 주었습니다. 기도를 마치니 인하는 ‘아멘’이라고 응답합니다.

예전엔 때때로 전화 기도도 했었지요. 인하에 돌출 행동이 나로 하여금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기도의 일상을 되살아나게 하였고 기도의 힘을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지극한 정성이 담긴 기도는 더 없이 아름다운 힘을 갖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기독교 신앙의 전부입니다. 모든 것이 기도에서 비롯됩니다.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했고,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합시다. 그러면 진정한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양재성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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