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지역 주민을 위한 목회 철학으로 연천의 으뜸 교회로 성장

전곡교회 외관
전곡교회 외관
전곡교회 박진구 담임목사
전곡교회 박진구 담임목사

전곡은 휴전선에 맞닿아 있는 연천군의 한 읍으로 전형적인 시골 지역이다. 인구는 약 2만여명. 그나마 연천군에서는 가장 많은 인구가 산다. 휴전선에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도 교회가 세워지고 말씀이 전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성장한다는 사실이 매우 신기할 뿐이다. 바로 그 주인공의 교회가 전곡교회(담임목사 박진구)다. 전곡교회에 오면 뜻밖의 외관에 깜짝 놀라게 된다. 시골스럽지 않은 현대식 건물에, 멋진 카페와 넓은 부지를 소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건물이 신앙인을 만들지 않듯이 전곡교회도 건축에 따른 빚과 감소되는 성도, 무엇보다 의욕이 없었던 교인들로 인해 침체를 겪어야 했다. 그만큼 오늘날처럼 성장의 아이콘으로 변모하기까지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했음은 물론이다. 

■ 전곡교회의 역사

전곡교회는 1926년 5월 20여명의 성도들이 최창호 씨 댁에서 윤(성명 미상) 전도사의 인도로 첫 예배를 드린 것이 시작이다. 이들이 다음해 남감리회 선교부의 도움으로 목조건물 6칸을 매입해 예배당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1945년 해방으로 전곡 땅이 북으로 편입하게 돼 예배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다. 더구나 6.25 전쟁으로 교회당마저 파괴되었지만, 1950년 5월 30일 수복과 함께 김동영 권사의 주선으로 미8군의 도움을 받아 천막교회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1954년 수복후 초대 담임자로 김효배 목사, 2대 담임자로 방은미 전도사가 부임했고, 1955년 8월 미군부대의 지원으로 목조 건물 50평으로 예배당을 신축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1956년 3대 담임자 최기섭 전도사가, 1957년 4대 담임자 이관훈 목사가, 1958년 5대 담임자 이명수 목사가 부임했다. 그리고 60년대에는 서정구 목사(6대), 신원희 목사(7대), 이영복 목사(8대), 신현무 목사(9대)가 부임했다. 1969년에 부임한 신현무 목사는 1988년까지 담임을 하면서 교육관과 본당 건물을 신축에 증축을 거듭하면서 교회 규모를 키워갔다. 이어 김영선 목사가 10대 담임자로, 천상준 목사가 1994년 11대 담임으로, 그해 11월 박종소 목사가 12대 담임으로 부임했고, 1996년 김봉식 장로의 1천평 기증와 함께 1055평의 매입으로 새성전 부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2천년대 들어와서 2002년 이종성 목사가 13대 담임 부임해 2010년 새성전 입당 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교회 외관을 갖추었다. 이어 2011년 제14대로 이환재 목사가 담임으로 취임했고, 2014년 제15대로 박진구 목사가 부임했다.

인터뷰 중인 양경모 기자
인터뷰 중인 양경모 기자
인터뷰 중인 김홍익 기자
인터뷰 중인 김홍익 기자

■ 2014년 이후 전곡교회

박진구 목사가 부임하기 전까지 전곡교회는 시골교회의 전형으로 선교영역을 넓혀가기 쉽지 않았다. 거의 모든 시골교회들이 유치부를 비롯한 교회학교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성도들의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시골교회의 한계를 극복해 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히 건축 빚을 갚는 일도 버거웠다. 교회 외관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옆의 장로교회로 옮겨가는 일도 담임목사와 교우들을 힘들게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부임한 박진구 목사는 영적인 변화를 통해 교회를 새롭게 변화시켜 갔다. 담임목사의 열심에 전 교인들이 합심하여 움직이기 시작했고, 새로운 가족들이 하나 둘 등록하더니 어느새 교회학교가 200여명 되었다. 부흥의 '엔진'에 한 번 불이 붙자 가속도가 붙어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계속 늘어 등록교인이 천 명을 돌파하는 교회로 변모했다.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영적인 변화도 뚜렷해졌다. 새벽기도에 모여서 기도하는 성도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 이런 변화는 교회 밖을 향해서도 나타나 지역 사회와 적극적인 관계를 맺고 지역 발전을 함께 이루어가는 교회로 거듭났다. '뽕나무 밭이 변하여 바다가 되듯'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전곡교회가 된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일까? 

전교인 체육대회 모습
전교인 체육대회 모습
예배 모습
예배 모습

■ 기도로 출발하다

이런 변화는 물론 제15대로 부임한 박진구 현 담임목사가 온 다음부터였다. “교회가 잘 지어져 있고, 일단 전곡에서 제일 크니까 호기심에 찾아오는 성도들이 있었는데, 적응하지 못하고 다 옆에 있는 장로교회로 갔다.”고 말하는 박 목사. 영적으로 무너져 있는 교회임을 눈치챈 탓일 것이다.

박 목사는 부임하자 가장 먼저 강단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다. 성령님께서 알려주신 방법이었다. 박 목사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자마자 혼자 저녁 10시만 되면 강단에 올라가 기도했다. 2014년 12월 8일에 부임했으니 가장 추울 때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출타하지 않는 이상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먼저 나와서 기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추울 때는 담요를 몇 겹이나 덮고 깔아야 했고, 여름에는 말도 못하게 더워서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수요 예배가 끝나고 나면 진이 빠져 강단으로 오기 싫을 때도 많았다. 주일도 혼신의 힘을 다해 예배를 드리고 나서 집에 들어가면 심적으로 다시 내려오기가 더욱 힘들다. 하지만 그런 유혹을 이겨내고 박 목사는 쉬지 않고 기도했다.   

“그런데 정말 기도하니까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정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우선 장로들의 통곡이 이어졌다. 박 목사의 말에 따르면 여기 장로님들은 담임목사를 월급쟁이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담임목사의 영적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았고, 선임인 재정부장은 그야말로 담임목사보다 더한 권위를 가졌다.  

박 목사는 기도를 하면서 시무장로부터 제자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딱 4주가 되자, 한 장로가 통곡하면서 “제가 바리새인입니다”라고 가슴을 쳤고, 또 한 장로는 “제가 죽일 놈입니다”라고 회개하는, 그야말로 뒤집어지는 역사가 벌어졌다. 부임한 지 3개월만의 일이었다. 

또 부임한지 이듬해 사순절 첫번째 특별새벽기도로 총력 동원했을 때, 매일 200명이 넘게 출석하며 뜨겁게 기도하였다. 부임 초기 새벽기도 인원이 11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새벽에 차가 100대 이상 들어오는 것을 보며, 성도들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하며 스스로 변화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의 감격을 박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그렇게 빨리 응답해 주실지는 몰랐습니다. 당시 얼마나 기도했는지 성대결절 수술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다보니 하나님이 영적으로 이 교회를 바꿔 주셨습니다.”
 

최근 연천군민을 위해 라면을 기증하고 있는 모습
최근 연천군민을 위해 라면을 기증하고 있는 모습

 

■ 좋은 일꾼들을 보내주시다

성도들이 변화되자, 하나님은 일할 일꾼들을 보내주셨다. 매년 100명 이상씩 등록을 했고 교회 일을 맡을 일꾼들도 오기 시작해 정착을 해 나갔다. 그리고 초신자들도 몰려들었다. 이들에게 성령의 바람이 부니까 변함을 얻고 부가적으로 교회 조직이 성장해 나갔다. 외적 변화가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영적으로 변화시키니까 담임목사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고, 목사가 무릎을 꿇으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를 하시고 보여 주시는 거였습니다. 지금은 모든 체제들이 담임목사 중심으로 가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갑시다’ 그러면 아멘하고 순종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에 목회자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박 목사의 지론대로 평신도 하고 같이 목회한다는 생각으로 장로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좋은 내용은 수용해 가며 하나되는 모습으로 교회를 세워갔다. 이때에 성도들의 삶에도 변화가 일어나 간증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변화되어 가자, 결산이 4억원이었던 재정이 작년 기준으로는 14억원까지 높아졌다. 박 목사는 이런 기적같은 변화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저 역시 죽다 살아난 겸험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고, 저는 그 경험과 기도에서 나오는 응답으로 설교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과 기적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성경은 다 기적의 이야기이죠.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선포하면 하나님이 다 만지십니다. 그렇게 되니까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집니다.”

■ 전곡교회가 성장하게 된 특별한 이유 3가지

박 목사는 “성장을 하지 않게 하니까 교회가 성장 안 하는 것”이라고 조언하며, 교회가 성장하려면 3가지 여건이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첫째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어야 되고, 둘째 목사가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이 쓰시게 서 있으면 된다. 그게 바로 기도다. 세 번째가 안 믿는 사람이 와 보고 싶은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이다. 즉 이 지역 사회에 왜 교회가 존재하는지 이유를 분명하게 심어 주어야 한다.

- 기도 이야기

두 번째 요인인 기도에 대한 박 목사의 이야기는 거의 간증이나 다름이 없었다. 박 목사는 자신이 전곡교회에 부임하고 보니, 자신의 한계를 넘는 곳임을 깨닫게 되었다. 빚이 20억 원이 넘는데다가 장년 300명이 모인다고 해서 부임했더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교인들이 와서는 이 문제 어떻게 하느냐고 자꾸 물어보았지만, 해답이 없었다. 결국 자신이 와서 할 것은 강단에 무릎 꿇는 것 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다른 능력이 없으니까, 기도할 때 성령님이 생각 주신 것 메모해 가지고 내려와서 그대로 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한 번도 빗나가는 게 없었고, 추진하는 것은 100% 성취되는 것을 보자 모든 이들이 다 인정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리더십도 세워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카페 ‘플로리안’(아름다운 꽃이 있는 카페라는 뜻)이다. (참고 내용 http://www.kmclif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0) 교회 건물을 지을 때 예배당만 집중해서 부속실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까 젊은이들이 늘어가면 차 마실 공간도 없었다. 그래서 교회 빈공간 50평에 이 카페를 지었다. 교회에 부임한지 1년만의 일이었다. 교회 빚도 많은 데다 89년이나 된 전통적인 교회가, 돈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차 마시는 것에 불과한 카페라는 것을 짓는다고 하니, 쉽게 받아드릴 수 있는 계획이 아니었다. 박 목사는 시무 장로님들과 이 일을 하면 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장로들에게는 “교회 건축하느라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지치셨습니까? 이번 일에서는 좀 쉬시고 고문으로 빠지세요. 제가 그냥 집사님와 권사님들 데리고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카페 플로리안의 모습
카페 플로리안의 모습
카페 플로리안의 모습
카페 플로리안의 모습

그리고 나서 정말 집사를 건축위원장으로 세우고 감당할만한 젊은 집사와 권사 20명을 건축위원들로 해서 카페를 지었다. 빚이 20억원 있는 상태에서 카페를 짓는다고 하니까 지방 교역자들도 전곡교회는 이제 끝났다고 수근거렸다. 빚도 못갚으면서 또 4~5억원을 빚낸다는 것이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일로 인해 새로운 역사가 일어났다. 일단 우려와 달리 빚없이 봉헌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고, 짓고 나니 하나님께서는 전곡 지역에서 가장 많이 찾는 명소가 되게 해 주셨다. 전곡에 카페다운 곳이 없으니까 주민들이 이곳을 쉴새 없이 찾아왔다. 1년에 10만 명 정도가 이 카페를 이용한다. 커피 2천 8백원짜리에 불과함에도 세금만 해도 1년에 3,000만원 낸다. 매일 매출이 50~60만원이다.

지역의 명소일 뿐만 아니라, 카페에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으로 지역 주민을 위해 선한 일을 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연천군에 자녀없는 70세 된 분들을 10개 읍, 면에서 3명씩 서른 분 초청해서 한복 맞춰 드리고, 잔치하며 선물을 해 드렸다. 그 행사만 몇 천만 원 들었다. 또 그때 기사였던 결혼 못한 친구들도 카페 수익금으로 무료결혼식을 해 주었다. 그렇게 큰 행사를 1년에 한두 차례씩 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하시지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가면 교회는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연천군 70대 어르신들을 위해 잔치하고 있는 행사
연천군 70대 어르신들을 위해 잔치하고 있는 행사
연천군 70대 어르신들을 위해 잔치하고 있는 행사
연천군 70대 어르신들을 위해 잔치하고 있는 행사

 

- 웅덩이 이야기
 
세 번째 이유로 꼽은 이야기는 박진구 목사가 늘 얘기하는 ‘웅덩이’론 목회 철학이다. 즉 웅덩이가 있는 곳에는 물고기가 모이듯이, 오고 싶은 교회를 만들면 사람들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2천만원 상당의 물품과 라면 1004박스를 기증했다. 코로나 시대에 2천만 원이면 전곡교회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박 목사가 기도하는데 이 생각이 들어 장로님들에게 말했더니 동의해서 결국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나니까, “너무 감사하다. 난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무슨 일 있으면 교회 꼭 불러달라”는 전화가 사무실에 꽤 왔었다. 박 목사는 이처럼 “전도 목적 이외에도 지역 사회에 헌신하는 게 교회의 존재 이유”라고 매우 강조한다. 전곡교회는 이후에도 지방에 있는 두 개의 비전교회에 5개월치 월세를 전달했다. 

이외에도 창립 90주년을 맞이해 음악회를 개최하거나, 우체부와 환경미화원, 택시 운전기사들을 대상으로 ‘사랑의 양말 나누기’, 낙도교회인 문갑교회 교인 여행시켜주기, 어르신을 향해 팥죽 대접, 연탄나누기, 장애우 초청예배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지역을 위해 선한 일을 꾸준히 벌여왔다.

교회학교도 ‘웅덩이’론을 똑같이 적용했다.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니까, 안 믿는 부모라도 교회에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 보낼 때 유익하다고 판단이 되면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교회학교가 성장해 나갔다.

■ 목회자는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물꼬를 터야 한다

자기 교회만 챙기는 게 아니라 연천군 전 지역민을 섬겨야 하니까 성도들이 너무 힘들어 하지 않을까? 박 목사는 이 부분에서 “성도들은 보람있는 열매들을 보게 되면 오히려 기뻐한다”라고 답을 내놓는다.

처음 전곡교회에 부임했을 때 선교한다고 두 군데 10만 원씩 비전교회 도와주고 있었다. 그것을 더욱 늘려서 말레이시아와 미얀마에 고아원과 교회를 지었다. 지금은 해외 10개국과 국내 포함해 30여 곳에 선교 후원금을 보낸다. 이렇게 하다보니 1,500만 원이던 선교비가 일 억원 지출할 때도 있었다. 당연히 선교부장은 매우 힘들어 했다. 하지만 박 목사는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 

“목회자가 할 일은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일이다”

목회자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해 주신 말씀만 하면 된다는 것이 박 목사의 지론이다. 얼마 전만 해도 박 목사는 코로나 시대에 어려움을 알면서도 성도들을 향해 십일조 설교를 했다(일년에 한번이지만). 어디까지나 하나님만 바라보고,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강단에서 박 목사의 사설이나 논리를 얘기하는 거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힘들어도 특별새벽기도 5일을 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성도들 개인에게 말씀 훈련을 벌이고 전교인 큐티 운동을 갖게 했다. 말씀으로 훈련시켜 나가야 모든 걸 이룰 수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장년부만이 아니라 교회학교 아이들에게도 적용했다. 그런데 영아부들은 글씨도 잘 모르니까 성경 숙제를 할 수가 없는데, 부모들이 대신 공부해 주면서 은혜를 받게 되었다. 교회학교는 쉐마 운동을, 장년부는 전교인 큐티운동을, 여기에 소그룹을 강화해 잦은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성도들이 교회 중심, 말씀 중심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꾸준히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교회의 비전에 대해 열정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박진구 목사
교회의 비전에 대해 열정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박진구 목사

■ 코로나 시대에 전곡교회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박 목사 역시 고민을 하고 있다. 이제 또 다른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할 때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방향은 언제나 똑같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접근해서 그들을 세워 갈 것인가”라는 점이다.

전혀 새로운 문제 앞에 정답을 누구도 내놓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하나 시도해 보는 것이 정답이라고 믿는다. 여름성경학교도 가정 여름성경학교로 해 보고, 가정예배도 강화하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그때그때 맞춰가려고 한다. 청장년들을 향해서는 소그룹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전곡교회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시도하여 성장했던 것처럼,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도 전곡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답을 찾으려 한다.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이 그러하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것이다. 부흥하지 않는 교회는 어려움이 오면 현재에 안주하고 보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박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목회자에게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하는 과정이 있다. 그리고 무엇이 맞는지 찾아내서 접목해 가야 한다”라고. 

전곡교회의 앞날이 오히려 새롭게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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